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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의 미학
전재학 2019-06-01 09:00 조회 80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지인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 사람은 너무나 완벽해. 바늘구멍 하나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철두철미하니 너무 인간미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고 부르잖아.” “사람이 좀 허술한 데가 있어야 농담도 하고 그러지.” “그래 맞아. 너무 완벽주의자야. 그 사람은 냉혈인간 같아.” “그래. 나 같으면 그렇게 못 살 것 같아. 도무지 빈틈이 없으니 가까이 가기가 싫어........”

 

너무 완벽을 추구하는 이웃에 대해서 모두가 한 마디씩 하는데 공통점은 빈틈이 없다는 것이다. 이때 깨달음을 얻었다. ‘, 빈틈이 인간의 매력이 될 수 있구나. 사람이 실수 좀 하면 어때. 실수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발전하는 것이지.’ 결론은 인간은 빈틈이 없으면 가까이하기에 부담이 되고 오히려 대인관계에 방해물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빈번한 실수를 저질러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피해야겠지만 애교로 보아줄 수 있을 정도의 빈틈,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빈틈은 오히려 인간적이어서 더 매력이 될 수가 있다.

 

1990년대 초, 우리 가요 중에 아름다운 미성의 남자 가수(박정수)가 부른 노래(그대 품에서 잠들었으면) 중에 나는 그대의 빈틈이 있었다면 사랑했을 것이다, 사랑했을 것이다.’라는 가사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적으로 상대에게 살짝이라도 빈틈을 보여주는 것이 이성간에 오히려 기꺼이 사랑의 대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소지가 많은 것 같다. 거기엔 일종의 남자의 보호본능이나 여성의 모성애를 느낀다고 할까. 사람은 솔직히 상대가 실수를 하거나 좀 모르는 것이 있는 등 허술한 면을 보일 때 내심 안도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왜냐면 자신이 조금이라도 상대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약자에겐 인간적인 연민을 느낀다. 상대를 기꺼이 도와주고 싶다. 그래서 약자 앞에선 심리적으로 더 편안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어찌 보면 이 모든 게 안정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자는 매사에 가급적 실수하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서 업무를 수행하는 일종의 완벽지향형 성격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직장에서 상대방이 필자처럼 완벽을 추구하려는 성향을 보이면 오히려 그로인해 정서적으로 호감을 갖기가 어렵다. 이 얼마나 모순덩어리인가?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필자 자신도 다소 느슨하고 빈틈이 보이는 모습으로 업무를 실행하는 사람이 되고자 의도적으로 시도했다. 그러자 점차 과거의 필자를 바라보는 눈빛과 비교하여 사람들로부터 상당히 부드러워진 눈빛을 목도했다. 물론 기질을 바꾸려 애쓰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고 하듯이 차라리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사람을 가급적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삶은 채우는 욕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비우는 겸손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이상국 시인의 이라는 시를 보자.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는/ 한겨울에 뿌리를 얼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위에 틈을 낸다고 한다/ 바위도/ 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견디며/ 몸을 내주었던 것이다/ (중략) / 바위도 나무에게 틈을 내주는데/ 사람은 사람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 시인은 자신들만의 영역을 굳게 지키는 사람들에게 지금부터라도 틈을 내고 서로서로 보듬자고 말한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사람을 품어야 한다. 작은 틈이라도 내야 한다. 지나치게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이 들어설 수 있는 틈을 어느 정도 내주는 사람이야말로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보다 어딘가 조금 모자라고 부족한 듯이 빈틈이 있는 사람에게 매력과 인간미를 느낀다. 이른바 빈틈의 미학'이 지혜롭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