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써 기쁘고 그로써 슬프다

2018-08-30 00:00       한기진 기자 satan@kihoilbo.co.kr

여든이 넘은 아버지가 회사에 출근하려는 아들의 앞을 막는다. 3만 원이 필요하단다. 매일 이웃 노인들에게 얻어먹는 소주를 한 번이라도 사고 싶은 마음이다. 아들은 박정하게 거절을 했다. 설거지를 하다 부자의 대화를 듣게 된 며느리. 시아버지의 그늘진 얼굴을 뒤로하고 밖으로 달려 나가 막 버스를 타려던 남편을 불러 세우곤 아이들 옷 살 돈이 필요하다며 손을 내밀었다. 아들이 지갑에서 꺼낸 8만 원 가운데 1만 원을 차비로 주고 남은 7만 원을 들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아버지는 집 현관 계단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며느리는 남편에게 받은 돈 전부를 시아버지 손에 쥐어주고는 "친구들과 소주도 드시고 노래방도 가시라"고 말했다. 시아버지는 고마운 마음이 너무 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날 저녁 남편이 퇴근해 귀가했다. 그런데 아이들 몰골이 더러워 도무지 말이 아니었다. 하루하루가 더해질수록 아이들 몰골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워졌다. 참다 못한 아들이 아내에게 화를 내며 이유를 물었다. 두 눈을 부릅뜬 남편을 행해 아내는 "당신이 냉정히 3만 원을 거절했듯이 우리가 늙어서 3만 원을 달래도 주지 않을 아이들을 곱게 키워 뭐하겠냐?"며 소리쳤다.

 죄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인 남편은 아버지 방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무정함을 잊었는지, 들어와 앉으라고 하고는 두 손을 꼭 잡으며 묻는다. "회사일이 고되지? 환절기가 되었으니 감기 조심해야 한다." 아들은 아버지 앞에 엎드려 울고 만다.

 독일에 ‘한 아버지는 열 아들을 키울 수 있으나 열 아들은 한 아버지를 봉양하기 어렵다’는 속담이 있다. 자식이 배부르고 따뜻한지를 부모는 늘 묻지만 자식들은 부모의 배고프고 추운 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자식들의 효성이 아무리 지극해도 부모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한다. 우리는 부모가 짐이 되고 효가 귀찮게만 생각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효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일은 부모가 자식에게 효를 내리 실천해 모범을 보이는 일이 꼭 필요하다. 논어에 이런 말이 있다. 부모의 나이는 기억하여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한 살을 더 드시면 그로써 기쁜 것이고 한 살을 더 드시면 그로써 슬픈 것이다. 올해 일흔을 맞으시는 어머니. 그로써 기쁘고 그로써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