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요 근래 아시아를 중심으로 급속히 번진 `사스'만 하더라도 과거에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빨리 퍼진 전염병의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옛날 중세에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을 죽인 흑사병의 경우가 있기는 하나 그것도 수년에 걸쳐 유럽에 한정되어 일어난 일이다. 사람과 물자 그리고 정보의 이동이 정보화의 힘을 빌려 음속이나 광속으로 빨리 빈번하게 일어나는 세계화의 한 어두운 면이다.


구소련 해체와 WTO가 세계화 선도


세계화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 세기 90년대에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하나는 1991년 12월 구소련의 해체로 상징되는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이에 따른 냉전의 종식이다. 이로 인해 그 때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 자유진영과 소련을 다른 한 축으로 하는 사회주의 공산진영으로 양분되었던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다른 하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진영만의 무역질서를 관할했던 가트(GATT)체제가 거의 전 세계 모든 국가를 망라하는 보편적 세계무역질서의 구축을 목표로 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확대 개편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세계 경제가 적어도 국제무역 측면에서는 하나의 체제로 통합된 일이다.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현재와 같은 국민국가(nation state) 체제가 궁극적으로 단일의 세계국가 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의 여건으로 보아서는 요원한 먼 미래의 일인 것처럼 보인다. 그 보다 훨씬 현실적인 것이 지역적으로 가까운 나라끼리 우선 경제적으로 통합하는 소위 지역주의(regionalism) 또는 지역통합(regional integration)움직임이다. 이미 유럽은 유럽연합(EU)을 구성해 경제적으로는 물론 유럽헌법을 제정하는 등 정치적으로도 거의 한 나라처럼 바뀌고 있다.
 
이처럼 전통적 국민국가의 성격과 기능을 변화시키는 움직임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한 국가 내에서 지방의 기능과 역할 확대 즉 지방화(localization)이다. 중앙정부가 독점하던 권한을 지방자치 차원에서 지방정부가 나누어 가짐으로써 실질적인 민주화와 분권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중앙에 모든 권한이 집중돼 왔으며 이의 폐단이 현재까지도 계속돼 현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과 이를 위한 수도이전 논의까지 나오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전통적인 국가기능의 변화라는 면에서 한편에서 세계화 또는 지역주의와 다른 한편에서 지방화는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방화와 세계화의 동시 진행을 의미하는 소위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라는 용어도 그 의미가 커진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균형발전 문제도 지방의 세계화로 해결이 가능하다. 균형발전의 토대가 되는 국가의 개념과 외연이 세계화와 지방화에 의해 위로부터 밑으로부터 각각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균형의 의미는 달라져야 한다. 특히 지방의 세계화를 통한 경제의 성장, 즉 파이의 확대는 정해진 파이의 분배를 통한 균형달성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경제자유구역은 지방의 세계화 시험대


작년에 시작한 경제자유구역 정책은 핵심이 지방의 세계화를 실현하는 데에 있다. 여러 지방 중에서 여건이 가장 좋은 곳을 지정해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통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선진적 비즈니스 중심지를 만들어 보겠다는 취지이다. 경제자유구역이 성공하면 여타 다른 지방에도 단계적으로 확대 실시함으로써 우리나라 전체가 선진경제로 도약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가장 먼저 경제자유구역청을 개설한 인천이 세계화 시대에 지방의 역할을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선도적 사례가 되길 기대해 본다.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대학장


〈박제훈 학장 학·경력〉
 ▶서울대 경제학 석사
 ▶미 오하이오 주립대 경제학 박사
 ▶산업연구원 공산권 연구실 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학교 국제지역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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