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화제 속에 SBS TV '파리의 연인'(극본 김은숙 강은정, 연출 신우철 손정현)이 막을 내렸다.

15일 최종 시청률 57.4%로 역대 드라마 회당 시청률 10위, 평균 시청률 41.1%로 역대 12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던 작품이다.

박신양-김정은의 호연으로 촉발된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TV라는 매체가 지닌 파괴력을 통해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 '파리의 연인'은 끝났지만, 이 작품이 연예계와 방송계에 남긴 의미와 숙제는 꽤 오래도록 여진으로 남을 것이다.

◇Best Effects

▲시청자들은 연기력 있는 배우를 원한다 = 박신양과 김정은. 방영 전 두 배우는 호감은 갔지만 남녀노소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전원 집합시킬 만큼 매력있는 '미끼'는 아니었다. 박신양은 6년만에, 김정은은 3년만에 드라마에 출연했다. 영화배우로서 흥행의 성공과 부진을 오가며 대중의 관심권에 웬만큼 걸쳐 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백마 탄 왕자' 한기주와 '신데렐라' 강태영이라는 구태의연한 캐릭터는 이들에 의해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다른 모든 것은 완벽하지만 사랑에 서툰 남자와 다른 모든 것이 답답한데도 삶을 사랑하는 방식은 적극적인 여자의 모습이 살아있는 인물처럼 생동감 있었다.

이들의 연기는 신체연기는커녕 발음조차 되지 않는 아마추어급 연기자들의 젖비린내 나는 연기에 물릴대로 물린 시청자들의 눈에 금방 띄었다. '배우는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기본상식을 다시 한번 되새겨줬다.

▲좋은 드라마는 찌든 현실의 위안이 된다 = 올 여름 무척 더웠다. 10년만에 찾아온 무더위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사회.국제.경제 등 모든 환경이 체감온도를 더 높였다.

드라마가 이런 현실을 외면하게 하고 도피처를 만든다는 지적이 있지만, 일반 서민들에게 돈 들이지 않고 볼 수 있는 드라마에서 이런 위안조차 받을 수 없다면 더욱 힘들었을 것.

이화여대 주철환 교수는 "사람들이 목마를 때 오아시스를 찾는 것처럼 힘든 현실에서는 더욱 판타지를 꿈꾼다.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하는 것도 TV가 담당하는 오락적 기능"이라고 말했다.

◇Worst Effects

▲드라마, 자본주의의 첨병이 되다 = 방영 내내 '파리의 연인' 만큼 간접광고(PPL) 문제로 논란이 된 드라마가 없었다. 제작지원을 해준 자동차회사 뿐 아니라 MP3,휴대폰부터 자전거의 바람개비, 건강을 챙겨주는 가루녹차, 다이어트 기구, 심지어 장미향이 난다는 음료까지 제작협찬금이 걸려있지 않은 소품이 없었다.

뒤늦게 방송위원회로부터 사과조처를 명령받았지만 딱 종영 2주일 전이었다.

이에 대해 동아방송대 홍용락 교수는 "방송사의 후안무치적 행위이며 명백히 방송사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못박았다. 그는 "도대체 회당 5천600만원의 제작비로 파리 로케이션을 간다는 기획안을 받아들였다는 것과 부족한 제작비는 알아서 충당하라는 건 방송의 공익성을 망각한 범법행위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매년 1천억원 가까운 순이익이 남는 방송사에서 제작비를 현실화하지 않는 건 방송법을 어기기로 작정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홍 교수는 "O.S.T.를 위해 대본에 나와있는 노래까지 바꿀 정도로 돈버는 데만 급급한 스타들과 그들 소속사의 부족한 공인의식"도 함께 꼬집었다.

물론 이같은 부정론에 대한 반론 역시 만만찮다. 한국광고주협회 김기원 사무국장은 "PPL은 더이상 광고가 아니다. 드라마가 수출상품인 상황에서 이는 문화콘텐츠생성을 위한 문화적 투자이며 문화마케팅"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에서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몸에 좋은' '살이 쫙 빠지는''뭐든 다 할 줄 아는' 식의 대사를 통해 화면이 없으면 그대로 광고라고 생각할 정도의 간접광고가 지나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쪽대본은 당연하다 = 박신양은 드라마를 찍으며 가장 힘든 부분에 대해 "내가 뭘 찍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촬영할까봐 겁난다. 방송 스태프들의 노동 강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할 문제"라고 언급했다.

네티즌들이 '8.13 대란'이라 불렀던 최종회 대본에 대한 항의와 이로 인해 순식간에 결말을 비틀어 시청자들의 요구에 부응(?)한 것은 쪽대본과 생방송에 가까운 제작환경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방영 2시간 전에 촬영을 끝낸 것은 '파리의 연인' 뿐 아니라 '발리에서 생긴 일'도 마찬가지였다. 촬영하기에도 급급한 제작시간은 반드시 결말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두 드라마 모두 방영 내내 열렬한 사랑을 받다 공감하기 어려운 결말로 인해 시청자들의 맥을 풀리게 했다.

이에 비해 '다모'는 비록 불완전하지만 사전제작을 통해 결말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 수 있도록 극적 구성을 전개했다.

미리 대본이 나오지 않은 채 제작하는 데 대해 한 외주제작사 대표는 "방송사가 시놉시스와 캐스팅만 보고 방영을 결정한다. 결정이 되지도 않았는데 미리 대본을 써놓을 수가 없다"고 항변한다. 그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반응에 민감한 만큼 이를 담기 위해서도 완전한 사전제작은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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