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임진왜란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중봉(重峯) 조헌(1544~1592)을 `9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고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친다.
 
김포 감정리에서 태어난 조헌은 스물네살때 과거에 급제한 뒤 예조좌랑, 통진현감, 전라도사, 종묘서령 등을 역임했다. 보은현감 재직시에는 당시 충청도에서 치민제일(治民第一)의 목민관(牧民官)으로 평가됐다.
 
그는 토정 이지함, 우계 성혼, 율곡 이이에게 수학했으며, 특히 율곡의 학덕을 배우고 기리기 위해 스스로 후율(後栗)이라는 호를 지어 사용했다. 1584년 겨울 충청도 옥천군 안읍 밤티의 궁벽한 산골로 은거하여 후율정사(後栗精舍)를 짓고, 생애의 마지막 7~8년을 제자를 가르치는데 바쳤다.
 
그는 16세기 조선사회에 대한 현실 인식과 실천적 학문관을 토대로 정치, 교육, 경제, 군사에 관한 근본적인 개혁론을 제시했다. 여러 차례에 걸친 강직한 상소와 도끼를 들고 올린 지부상소(持斧上疏) 등으로 함경도 길주로 유배되기도 했으며, 왜적의 침입을 예견하고 대비할 방책을 거듭 상소하기도 했다.
 
그는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호남의 고경명과 김천일, 영남의 곽재우와 정인홍과 함께 충청도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 수차례 의병을 규합하여 청주성을 수복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그는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의승장(義僧將) 영규(靈圭)와 함께 왜군에게 함락당한 금산 공격을 강행했다가 장렬하게 순국했다.
 
문화인물 선정을 기념해 9월13일 오후 2시 서울프레스센터 20층에서 관련 학술세미나가 열리고, 9월17일 오전 10시30분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 묘소 앞뜰에서 조헌 시비 제막식이 열린다. 9월17~18일 표충사 일원에서는 제28회 중봉 충열제, 10월28~31일 김포시 문화예술제에서 조헌과 700의사 관련 문화행사 등이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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