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주 러시아를 방문하고 있다. 러시아라는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전신인 구소련을 알지 못하고서는 불가능하다. 특히 구소련의 붕괴 원인과 그 교훈을 현 시점에서 다시 짚어보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1991년 12월26일 고르바쵸프 소련 대통령의 사임과 소련 최고회의 해체로 공식화된 소연방의 해체는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가지고 있는 체제의 기본모순이 근본원인이라 할 수 있다. 즉 기존체제로는 지속성장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이념적으로 옳고 명분이 있더라도 국민을 잘 먹고 잘 살지 못하게 하는 국가나 체제는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인류 역사가 말해 준다. 이러한 체제의 실패(system failure) 외에 기존체제 내에서의 개혁을 시도한 페레스트로이카의 실패, 1991년 8월의 보수쿠데타의 실패와 그에 따른 소련 공산당의 몰락 등이 연방 해체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요인은 과학기술혁명과 사회주의 체제와의 비 양립성에 있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미하일 고르바쵸프에 의해 시작된 페레스트로이카는 당초에는 기존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 내에서의 개혁을 통한 경제회복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70년 이상 기득권을 누려온 공산당 및 관료들의 반발로 인한 경제개혁의 부진은 신사고와 언론자유화(Glasnost)에 의한 정치·외교 및 사회 등 비경제부문을 포함한 포괄적인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게 했다.
 
이 결과 동·서독의 통일을 가능케 한 냉전 종식을 비롯해 소련 내에서의 자유화, 민주화 등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당초 기대했던 경제개혁에는 실패해 소련 경제는 페레스트로이카 이전보다 오히려 더욱 악화됨으로써 페레스트로이카는 실패로 끝나게 된다.
 
그렇다면 고르바쵸프는 무엇을 잘 못했던 것인가? 고르바쵸프의 최대의 실수는 정치적·경제적으로 회생하기 힘든 사회주의를 포기하기를 거부한 것과 별다른 대안 없이 구체제를 파괴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파산선고를 받은 사회주의 이념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던지지 못하고 사회주의 틀 속에서 시장경제를 도입함으로써 소위 소련식 `제3의 길'을 추구했다. 또한 자신의 권력 기반인 공산당마저 개혁하려는 와중에 무력화됨으로써 국가기강이 통제불능 상태로 빠지게 됐다. 정치적 안정 없이 경제개혁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구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보다 근본적으로는 마르크스적 용어를 빌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생산력은 기본적으로는 과학·기술수준에 의해 규정된다고 볼 수 있다. 7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정보화로 특징지워지는 새로운 과학·기술혁명에 의해 규정된 새로운 생산력 단계에서 기존의 사회주의 체제라는 생산관계가 더 이상 효율적인 작동이 어렵게 된 것이다.
 
지표상으로 보더라도 70년대 중반 이후 모든 사회주의 국가의 성장률이 급격히 둔화되기 시작했으며 이 때부터 두 체제 간의 경쟁은 이미 사실상 서방의 승리를 예고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 들어와 구소련의 성장률은 사실상 정체상태로 들어선 반면 서방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 80년에 출간되는 것에서 상징하듯이 정보화라는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정보화는 경제적으로는 개인의 창의적인 기업가정신(entrpreneurship),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보유통의 자유화를 기반으로 한다.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기 위한 기업과 산업의 거대화(gigantomania)와 의사결정의 집중과 정보통제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와는 본질적으로 상충되는 것이 정보화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라는 후진적 생산양식이 그 질곡으로 작용한 생산력을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과는 달리 20세기 종반은 사회주의라는 생산양식이 정보화라는 새로운 생산력의 질곡이 되는 역사의 변증법을 보여 주게 된 것이다.
 
최근 국내의 이념논쟁이나 국보법 폐지를 둘러싼 국론분열 등을 보면서 아직 이 땅에는 사회주의가 조종을 고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구소련 붕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백성을 잘 먹고 잘 살지 못하게 하는 체제는 오래 갈 수 없으며 정치적 안정 없이 경제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21세기 정보화 시대에서는 정보의 자유를 통제하는 어떠한 체제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박제훈 객원논설위원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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