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정 인천보훈지청장

우리 인천보훈지청 관내에는 1만6천여명의 국가유공자 및 가족이 등록되어 있다. 우리 조국이 국권을 침탈당했을 때, 혹은 북한의 무력 침략에 의해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빼앗길 위기에 처했을 때, 그리고 국가의 부름에 따라 자유와 평화의 사도로서 이역만리 월남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신 분 등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해 국민의 귀감으로 삼고 있다.

이 중에 300여명의 독립유공자 및 가족이 인천광역시와 부천, 광명, 김포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 생존 독립유공자 본인은 14분이 계신다.

      

독립운동을 겸손하게 표현한 최 지사

 

우리가 독립유공자 하면 일반적으로 연세가 지긋하시면서 약간은 엄한 인상을 갖고 있는 할아버지 같은 모습을 그려본다. 그런데 그 분들 가운데 여성 애국지사가 계신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올해 광복 60주년이 되는 현재에도 아직도 여성의 지위향상이 필요하다고 하는 실정인데, 광복 이전 일제 치하에서는 훨씬 열악한 조건이기에 과연 어떻게 여성의 위치에서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 지에 관심을 갖고 직접 찾아뵈었다.

최예근 지사님은 80을 넘으신 연세이기에 최근에 몸이 안 좋으셔서 활동에 많은 지장을 받고 있었다. 더욱이 추운 날씨에는 몸을 추스르기가 훨씬 어렵다는 말씀을 했다. 우리의 전통 여성들처럼 최 지사님은 자그만한 키에 자신의 독립운동을 겸손하게 표현하고 계셨다.
 

최 지사님은 1935년 서탑신사 방화 사건 때 모친 정신기 여사와 함께 현장에 간 혐의로 어린 나이에 체포되어 구류를 살아야 했다. 그리고 1940년에는 경찰의 감시를 피해 중국의 봉천에서 모친의 지시로 군자금을 전달했으며, 후에 군자금과 모친이 보내는 독립운동에 관한 연락문을 휴대하고 전달 도중 봉천행 열차에서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모친이신 정신기 여사님이 최 지사님보다 훨씬 공적이 크신데, 몇 가지 서류 미비로 독립유공자로 등록을 못 시켜 드리고 최근에 세상을 뜨게 하신 것이 못내 아쉽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최 지사님 자신의 독립운동 당시를 회상하시면서, 백범 김 구 선생이 시해되기 직전의 경교장에서의 생활, 역사적인 38선을 넘을 당시의 김 구 선생의 아드님이신 김 신 선생과 비서인 선우 진 지사의 모습을 마치 엊그제 일어난 것처럼 회고했다. 그리고 같이 활동했던 애국지사에 대한 호칭을 `동지'라고 하는 모습에서 결코 유약한 여성이 아닌 강단 있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이는 데서 독립운동가의 생생한 면모와 함께, 지사님 자신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실천적으로 여성의 지위향상을 보여주는 여성 운동가라고 해도 결코 무리가 아닐 듯 싶었다.

    

사회통합에 힘쓸 것 주문

국권 회복을 위해서 일신을 바치신 분으로서 최 지사님은 우리나라가 더 이상의 사회적 갈등이나 이념 대립을 지양하고 사회통합에 힘써서 치열한 국제 경쟁 사회에서 선진국가로 도약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해가 바뀔수록 몸이 유약해 져서 자식들에게 신세를 지려고 하는 보통의 나이 드신 분들과는 달리, 자신은 결코 후손들에게 대접을 받는다거나 짐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모습에서 최 지사님께서 여성으로서 보여주신 독립운동 정신이 결코 일과성이거나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그러한 정신이 생활 속에 배어 있음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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