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의식이 정치발전 원동력"

기호일보 지령 5000호를 맞아 기호일보와 함께 한 인천지역 17년 정치사를 재조명해 보았다. 각종 자료들이 미담보다 부끄러웠던 과거들이 더 많이 기록돼 `정치란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 노력하는 정치가 돼야 한다'는 금언이 새롭다.

지난 시간들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종 자료에 의해 들쳐질 때 역사는 재조명되는 것이다.

기호일보는 지난 17년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 1만, 10만, 100만호로 이어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천과 경기지역의 각종 기록들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편집자 주〉


33명 후보 난립 민정당 압승

◇13대 총선

   
기호일보가 창간(1988년 7월20일)을 준비하던 3개월 전인 그 해 4월26일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다. 13대 총선에서는 평균 경쟁률이 4.7대1로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17년만에 부활된 소선거구제로 후보자들이 뿌린 선거자금도 유례없이 막대하게 투입된 선거로 전해지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1개 선거구에서 소요된 선거비용으로 여당의 경우 20억원을, 야당의 경우 5억원을 각각 선거비용으로 지출한 것으로 당시 언론들이 보도했다.

당시 인천지역 선거구는 중구와 동구를 1개 지역구를 비롯해 7개 지역, 7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또한 인천지역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은 곳은 서구지역으로 민정, 민주, 평민, 공화, 한겨레당과 무소속 등 5개 정당 6명의 입후보로 6대1의 경쟁을 했다.

4·26선거에서 당선된 후보자들을 살펴보면 민정당 소속이 6명, 민주당이 1명으로 여당이 압승했다.

지역구를 살펴보면 중·동구에 민주당 서정화 의원이 4만8천502표로 당선한 것을 필두로 남구갑 심정구 4만8천663표, 남구을 이강희 3만5천618표, 남동구 강우혁 3만7천137표, 북구을 이승윤 3만389표, 서구 조영장 후보가 2만1천812표로 당선, 6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고, 민주당은 북구갑에 정정훈 후보가 3만8천252표로 당선, 간신히 1석을 건졌다.

남구의 경우 민정, 민주, 평민, 공화, 한겨례당 등 5개 정당이 입후보자를 냈으며, 남구을과 남동구의 경우 소위 메이저 4당만이 입후보했고, 북구갑에서 4대 정당 외에 한겨레당이 입후보함에 따라 5명의 후보자가 경쟁을 벌렸다.

이에 따라 인천지역에 소요된 선거비용은 엄청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여당인 민정당 7명을 비롯해 민주당 7명, 평민당 7명, 공화당 7명, 한겨레당 2명, 민중당 1명, 기독성민당 등 각 정당과 무소속 33명의 후보자가 나서 치열하게 치른 선거로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 정치문화 창출 민심 요동

◇14대 총선

14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92년 3월24일 실시됐으며 당시 정당으로는 여당인 민자당과

   
야당인 민주당, 국민당, 신정당, 민중당, 공명당 등 6개 정당이 입후보자와 무소속 조진형 후보까지 33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중·동구, 남구갑, 남동구, 서구지역에서 각각 5명의 입후보자가 경쟁을 했으며, 북구갑이 6명의 입후보자로 가장 높은 경쟁지역으로 기록되고 있다.

반면에 가장 낮은 경쟁률을 보인 곳은 남구을 지역으로 민자, 민주, 국민 등 3당만의 후보자밖에 없어 3대1로 가장 낮은 경쟁률을 보였다.

당시 언론에서는 14대 총선에 대해 `정치인들과 국민들 모두 놀라게 한 준혁명적 선거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민자당을 패배시킨 선거는 군사공작정치와 정보공작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을 명백히 보여줬다고 했다.

국민들은 `군부와 T·K 복합체에 대한 시민반란의 의미를 받아들여 이들을 타파한 새정치문화 창출'이라는 구호들이 인천을 비롯해 수도권에서도 커다란 바람을 일으켰다.

그렇지만 당시 인천지역에서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민자당은 중구·동구에서 서정화 후보자를 냈고 서 후보는 4만4천698표로 당선, 12대에 이어 3선 의원으로 등원하면서 민자당은 남구갑에 심정구, 남동구 강우혁, 북구을 이승윤, 서구에 조영장 후보로 5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은 남구을에서 하근수 후보가 4만2천203표로 1곳에서 자존심을 지키는 데 그쳤고, 북구갑 지역에서 무소속인 조진형 후보가 4만4천990표로 당선되는 이변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민자당의 `아성'이라 불리던 인천지역 7개 선거구에서 5석밖에 확보하지 못하는 불운이 시작된 3·24 총선으로 평가됐다.

 

비례대표 30% 여성에 할당

◇15대 총선

   
15대 국회의원선거는 96년 4월11일 실시됐으며 4·11총선에서 달라진 것은 7개 선거구에서 11개 선거구로 늘어났다. 당시 자료는 선거인구 상한선이 기존 14대 때 7만5천∼30만명에서 9만∼35만명으로 변경되면서 인천지역이 11개 지역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경기도에서도 3개 선거구가 늘어났다.

전체 국회의원은 299명에서 273명으로 줄어들었으며 전국구 46명이었다. 특히 비례대표 30%를 여성에게 할당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인천지역에서 옹진군이 중·동구에 편입됐고 계양구와 강화군이 갑·을로 나뉘어진 것이 또 다른 변천사가 됐다.

당시 계양구와 강화군갑 지역에 신한국당으로 출마한 안상수(현 인천시장) 후보가 출마해 낙선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국민회의 이기문 후보가 여당의 프리미엄을 제치고 2만9천688표를 얻어 안 후보를 누르고 승리한 곳으로 관심을 끌었다.

또한 계양·강화을 지역은 17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경재 위원장이 신한국당 소속으로 처음 출마해 1만9천758표로 당선된 곳으로 낙선과 재당선을 번갈아 한 곳으로 소문난 선거구다.

4·11 총선거에서 신한국당소속 당선자는 중구·동구·옹진군에 서정화 후보, 남구갑 심정구, 남구을 이강희, 연수구 서한샘, 남동구갑 이윤성, 남동구을 이원복, 부평구갑 조진형, 부평구을 이재명 후보가 당선됐다.

새정치국민회의는 계양구·강화군갑에 이기문 후보가 당선되고, 서구에 조철규 후보가 3만6천823표로 당선됨에 따라 인천지역에서 국민회의가 야당으로 2개 의석을 차지했다.

당시 전국적인 정치바람은 예상을 깨고 민정당에서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뀐 뒤 치러진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승리를 거뒀고, 야권에서는 각당의 패배에 따른 갈등과 개편문제가 총선이후로 이어졌다.

원내 여소야대를 이뤄 여권을 견제하며 97년 정권교체와 내각제 개헌추진을 다짐했던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표결결과 신한국당 절대의석 확보로 나타나 향후 정국운용에 있어 커다란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 선거였다.

자민련의 경우도 당초 목표 의석의 절반 정도로 주저앉게 됨으로써 총선에 결정적인 악양향을 미친 공천잡음 등을 놓고 책임문제 거론이 불가피해졌으며 정국의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겠다는 입장은 무력화된 상태였다.

또 민주당은 원내교섭단체 구성에도 실패함으로써 선거 패배 책임과 총선이후 치열해질 당선의원 영입교섭 등의 외풍에 시달려 당의 존속과 3김 청산 분위기에 어우러져 정치권에 폭풍이 몰아쳤던 선거였다.

 

정권교체 여파 민주당 돌풍

◇16대 총선

16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0년 4월13일 실시됐으며 새정치국민회의가 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고,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함에 따라 여당으로서 인천지역에 새로운 정치바람을 몰고 왔다.

신한국당도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새롭게 했으며, 특히 16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여야가 서로 바뀌어 치러진 선거로 야당인 한나라당이 15대 총선과 달리 고전했다.

지역구는 15대와 같은 11개였으나 강화군이 서구로 편입되는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여야가 바뀌는 바람에 민주당이 6개 지역구를 차지하고, 한나라당은 5개 지역구를 차지했다.

정당별 지역구 당선자를 살펴보면 민주당이 남동구을 이호웅, 부평구갑 박상규, 부평을 최용규, 계양구 송영길, 서구·강화갑 조한천, 서구·강화을 박용호 후보가 당선했으며 한나라당은 중구·동구·옹진군에서 서상섭, 남구갑 민봉기, 남구을 안영근, 연수구 황우여, 남동갑 이윤성 후보가 당선되면서 정치권은 인천지역에 대해 `해바라기'(여당)지역으로 불리게 됐다.

 

인천 투표율 전국 꼴찌 오명

◇17대 총선
 

   
17대 국회의원 선거는 여당인 민주당이 갈라져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분당했고, 한나라당은 그대로 당명을 유지했다. 17대 선거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9석을 차지했으며, 한나라당은 3개 지역을 차지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아성으로 알려져 있는 중구와 동구·옹진군 지역에 한광원 후보를 내세워 15년 만에 무너뜨리지는 등 인천에 새로운 바람이 피어오르게 했다.

그러나 인천지역의 17대 투표율이 전국 시·도중에서 최하위인 52,1%대에 그쳐 지역 정가에서는 `실망'의 눈초리가 높다.

올해 초 총 유권자수 184만7천46명(부재자 4만2천811명) 가운데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는 96만1천592명이었다. 지난 16대 총선(53.4%),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39.4%)에서 최하위의 투표율을 기록한 인천은 이번 17대 총선에서도 전국 평균 투표율(56.2%)에도 못 미치는 최하위란 불명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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