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분권운동의 불을 댕긴 호소가와 전 총리가 고향 구마모토 현의 지사로 있을 때의 치적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추구한 `다양성'에 대한 집념이었다.

그는 일본의 도시와 건물들이 대체로 획일화돼 있어 도시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간판을 보고서는 자신이 어느 도시에 와 있는지를 착각할 정도라며 그 예로 뾰족한 삼각지붕의 역사(驛舍), 초등학교 건물, 성냥갑처럼 빼곡한 아파트촌을 꼽았다.

호소가와는 지사가 된 이후 대형 집단아파트촌의 설계를 여러 명의 건축사에 맡겨 건물색채와 지붕형태를 각기 달리하도록 했는가 하면 가을이면 청소부들이 빡빡 쓸고 또 쓸어대야 했던 현청 앞 가로수의 낙엽을 그냥 수북히 쌓이게 해 주민들에게 황금빛 정취를 선물했다.

재선을 한 뒤 `한번만 더 일해 달라'는 고향주민들의 성원을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로 뿌리치고 훗날 중앙정계로 진출해 연립내각의 총리에까지 올라 지방분권운동의 선봉에 섰던 호소가와는 아마도 `시각적(視覺的) 다양성'을 통해 `사유(思惟)와 문화의 다양성'까지 추구하려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상존하는 외형적 획일문화

 

대도시를 중심으로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우리는 아직 `앞으로 나란히 식'의 획일화된 문화구조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시골에 가면 삼각형 형태의 역사건물을 여전히 볼 수 있고, 시멘트 색깔 그대로인 전(田)자형 다리 난간, 성냥갑을 즐비하게 늘어놓은 것 같은 한강변의 고층아파트와 농촌의 새마을 주택들이 획일화의 유물처럼 상존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외형적인 획일 문화가 국민의식과 사고의 내면적 다양성까지 상실시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의식과 사고의 획일화는 자기중심적 아집과 편견을 낳을 우려가 많다.

다른 사람과 집단의 존재가치와 입장, 주의 주장을 인정해주지 않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 남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라는 식의 의식문화가 판칠 때 다원화돼 가고 있는 민주사회의 소중한 가치인 상호존중과 호혜평등의 `다양성'은 상실될 수밖에 없으며, `상생'(相生) 또한 기대할 수 없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의식의 존재 구속력'이 타협과 상호 양보를 통해 욕망충족의 순서를 정하는 민주적 합의의 과정을 외면한 채 배타적 이기로 흐른다면 그 사회는 분열과 갈등, 대립과 상쟁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뼈저리게 체험했고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했던 `획일화 사회'의 역사적 경험으로도 실증되고 있다.

`일사불란'을 효율성으로 포장했던 군사정권하의 권위주의체제와 중앙집권형 행정체계, 보스중심의 정당운영 행태, 대기업중심의 경제구조, 사상과 이념의 대립구도 등등.

그리고 그 체제하에서 증폭돼 온 정칟사회·경제·문화적 갈등과 지역 간·계층 간·집단 간·세대 간 대립과 분열양상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국민통합과 공동체 의식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기적 이해에 집착해 국가와 지역사회, 집단의 장기적 손해는 아랑곳하지 않는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현상은 요즘도 대형 국책사업 추진과정에서 목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양성과 균형성을 국가적 의제로 설정해야

 

오로지 나, 우리 지역, 우리 집단만이 의식과 행태의 중심에 놓여있을 때, 다수결조차 거부하는 획일적 사고만이 지배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다양성과 균형성이 실종되고 이해·갈등의 조정기제가 허물어질 때, 우리 사회, 우리 국가의 공동선은 어디에서 구현될 수 있을까.

이즈음에 우리는 다양성과 균형성 추구 없이는 선진화된 민주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시급한 국가적 의제로 설정해 실천하는 국민적 의지를 결집해야 한다.

이를 조금 좁혀 지역사회 발전과 연계시켜 본다면 획일화된 중앙집권체제하의 개발시스템을 획기적으로 전환,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제도를 기반으로 각 지방의 차별화된 특성을 다양화의 수단으로 창출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인천은 인천답게, 경기는 경기답게, 강원은 강원답게, 대구는 대구답게, 광주는 광주답게, 대전은 대전답게 차별화된 각기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체성이다. 그 지역이 그 지역 같고, 그 도시가 그 도시 같은 획일화된 체제하에서 경쟁력은 결코 확보될 수 없다.

지역의 성장산업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지역에서 잘 되는 산업이니까 덩달아 따라가는, 다른 고장에서 잘 되는 축제니까 내용만 일부 바꿔 뒤따라가는 `흉내내기 식'의 지역개발은 국가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비효율의 극치이다.

     

지방신문은 철저한 지역차별화 추구해야

 

신문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전국지는 전국지답게, 지방지는 지방지답게, 뉴스가치와 지면의 콘텐츠가 차별화되고 다양성을 지녀야 한다. 특히 지방신문의 존재가치는 여론의 다양성 확보에 있다.

소수의 전국지가 신문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여론의 다양성은 찾아질 수 없다. 그러기에 지방신문은 철저한 지역 밀착화와 차별화로서 지역사회의 다원화, 여론의 다양성이 추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며 이를 통해 지역주민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이러한 다양성의 구현이야말로 바로 21세기가 요구하고 있고, 우리 사회의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지역혁신이자 지방신문의 혁신이며, 나아가 전국이 골고루 개성있게 잘 사는 균형 잡힌 사회, 상생의 선진형 민주국가를 이룩하는 길이다.

김중석 전국지방신문협의회 간사(강원도민일보 상무)

〈필자소개〉

강원도 양구 출생. 강원대 졸

강원도민일보 편집상무

지방분권 국민운동 대변인

전국지방신문협의회 간사

대한석탄공사 이사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저서:지방분권과 지방언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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