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가 안좋아지면서 소주 소비량까지 줄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하지만 진료실에서 느끼기에는 일이 안풀리고 장사가 안되고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들을 음주로 푸는 환자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간이 나쁘다는 결과를 듣고 대학병원까지 찾아오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술이 원인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환자들의 치료의 성패는 환자자신 및 동료(?)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코올성 간질환의 치료는 크게 2가지로 나누어 지는데 첫째 `술을 끊고' 둘째 손상된 간을 약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들은 우선적으로 해야할 `술을 끊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술에 절은 간을 해독시켜주는 명약 혹은 비방을 기대하고 병원을 찾게 된다. 이런 약 혹은 입으로 먹는 무언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는 관념 때문에 이미 간에 좋다는 보조식품이나 간장약, 약초, 민간요법으로 만든 것 등을 먹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전 회사 검진에서 간질환 의심으로 재검사하러 왔던 환자에게 “술은 얼마나 드세요”라는 질문을 하자 멋쩍게 웃으면서 “일주일에 마시는 날이 더 많구요, 한번에 소주 한 두병씩은 먹죠”라고 대답한 뒤 사족이 따라나온다. “뭐 사회생활하다 보면 어쩔 수 없어요.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술마시면서도 간이 나빠지지 않는 약은 없나요?”라는 말로 술은 절대 못 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의사에게, 혹은 따라온 가족들에게 표명한다.

이런 환자들에게 필자는 이런 예를 해준다. 아이들이 밖에서 누군가에게 맞아 매일 눈이 퍼렇게 멍이 들어 온다면 환자분은 그때마다 멍든 자리에 약만 발라주시겠어요. 아니면 때린 아이를 찾아서 못때리게 하시겠어요? 이런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금주 필요성과는 더 이상 연관시키지 못하고 결국 환자들에게 통상적인 간장질환제를 처방하는 것으로 진료가 끝나고 만다. 이렇게 진료실을 나간 환자들은 또 어딘가에 있을 비방을 찾아 헤메고 다니며 술마시는 만큼의 돈을 쓰고 다닌다.

사실 알코올성 간질환에 특효가 있는 약은 별로 없다. 게다가 술을 계속 과량으로 마시는 환자에게는 더더욱 약이 효과가 없을 수밖에 없다. 결국 간에 손상이 가지 않는 적당한 음주를 다시한번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느정도 마시는 게 건강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적정음주 혹은 저위험도 음주는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성인남자를 대상으로 하루 알코올 30mg(소주 3잔, 맥주 3잔, 양주 2잔, 막걸리 2홉 정도)으로 정하고 있고, 미국의 경우 1995년 NIAAA(알코올 남용과 알코올중독을 위한 국가기관)에서 적당음주란 남성에서 하루 양주 2잔(한잔에 알콜 15mg 포함됨)이며, 여성과 65세 노인은 한잔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음주로 인한 간손상은 개인차가 심하고 여성이 특히 더 취약하다는 것이다. 최근 여성 음주율이 많이 증가하고 있는데 가까운 일본에서는 여성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들의 몇배 증가했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하니 여자분들 특히 조심하시기 바란다.

그러나 술 좀 한다 하는 분, 더구나 간이 나빠져 병원까지 오시는 분들에게 이 정도는 그야말로 간에 기별도 안가는 양이기 때문에 앞으로 술마시고 싶으시면 이 정도만 드세요라고 하는 경우 환자들은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생각으로 이 정도만 마셔야지 하고 시작한 술자리는 마시다 보면 끝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음주량보다 횟수를 줄이도록 더 강조한다. 마시고 싶더라도 제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드시고 간을 좀 쉬게 해주세요라고 사정을 한다.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잔까지 돌려가며 폭주하는 회식문화가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간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자주 술을 마시는 경우 본인이 과연 얼마나 마시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효과적으로 절주하는 보조방법은 책상에 놓여 있는 작은 달력에 술 한잔이라도 입에 댄 날은 빨간색으로 칠해 놓는 것이다. 이러면 시각적으로 본인이 한달에 며칠이나 술과 함께 지냈는지, 본인의 간이 얼마나 힘든 한달을 지냈는지 손쉽게 알아볼 수 있다.

출근길 앞차에 “일주일에 하루만! 승용차를 쉬게 해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수요일을 자동차를 쉬게 하겠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술을 너무도 사랑하시는 이들께 자동차 앞에 이런 스티커를 하나 만들어 붙이고 다니기를 권유하고 싶다. “음주는 일주일에 하루만! 간을 쉬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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