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우리에게 있어 무엇인가. 우호국가인가, 적대국가인가. 우리는 어린시절 `반공·방일'이란 구호에 둘러싸여 자란 적이 있다. 공산주의 못지않게 일본을 적대시하고 경계했던 것이다.

필자는 대학시절 `굴욕적인 한일협정'반대운동에 앞장서다 20세의 젊은 나이에 대학에서 제적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에 우리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가슴 설레이며 `민족주체성과 조국의 근대화'를 놓고 밤을 세워 토론하고 고민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한·일국교수립이래 경제협력을 필두로 해 정부·민간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지면서 한·일 관계는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아시아에서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룬 나라는 한·일 두 나라 뿐이다. 경제발전과 민주발전을 이루면서 두나라 관계는 지리적인 거리에 못지않게 밀접하고 중요해졌다. 해방 60년, 국교수립 40년이 되는 금년에는 양국 우호를 더욱 다지기 위해 `한·일 우정의 해'로 정하기도 했다.

     

수십년전으로 되돌아간 듯

그러나 요즘 한·일간에는 독도 문제를 비롯, 과거사문제, 역사교과서 문제 등이 대두되며 갈등과 분쟁이 증폭, 극대화돼 돌연 수십년전의 적대관계로 되돌아 간 듯하다. 정부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를 보면 마치 당장 국교가 단절되고 일촉즉발의 충돌이 생길 듯하며, 당황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독도 영유권문제는 비록 우리한국의 영토임이 명백하다 할지라도 한·일 양국에 있어 하루 아침에 해결을 기대할 수 없는 오래된 문제이며, 국민감정을 폭발시키는 뇌관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외교적, 정치적으로 신중하게 다뤄야 할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작금에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국민의 감정과 적개심에 호소하는 듯하고, 하루아침에 상대방을 굴복시켜 해결코자 하는 듯하다. 상대방을 완전굴복시키는 방법은 무력에 호소하는 길 뿐이다. 이런 감정적 대결로 치닫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언론보도를 보면 양국 정상들간의 감정적 충돌까지로 번지는 것이 아닌가를 우려케 한다. 우리는 외교적 용어에 익숙해 있지 않지만, 얼마전 외교통상부장관의 “독도문제는 한·일외교관계 이상의 문제다”라는 표현을 접하면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통일부장관이 발표한 대일 독트린은 86년 전의 기미독립선언문을 참조했으며, 침략 등 강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양국가간에 외교적·이성적으로 접근해 나가야 할 문제들이 물리적·감정적 대결로 치닫고 있음을 우려치 않을 수 없다.

국가간에 분쟁과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이웃나라간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분쟁이 양국간에 본질적 관계를 해쳐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한·일 국교수립후 40여년간 경제협력은 물론, 인적·문화적·학술적 교류와 협력 등이 활발해지고, 2002년 월드컵공동개최로 세계인을 감동시켰으며, 근래에는 일본에 한류열풍이 불기도 하는 등 양국 국민간에 모처럼 형성된 친밀한 우호관계를 허물어 뜨리고, 수십년전의 적대적 관계로 되돌아 가려는 것인가. 한·일 양국은 독도문제 등에 대해 냉정을 되찾고,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외교적·이성적 접근을 통해 훼손된 신뢰와 우호관계를 조속히 복원할 수 있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한·미·일 우호관계 견고해야

20세기 말부터 개방화 물결에 따라 동북아시대가 열리고 있으며, 동북아에는 일본 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가 있고, 미국 역시 태평양국가로서 동북아의 일원이라 할 수 있다. 우리 한국은 바로 이들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으며, 더욱이 남북 분단의 불리한 여건을 알고 있다. 강대국들은 100여년전 제국주의 시대나 2차대전후 냉전체제에서나 상호 이해관계가 상충해 왔으며, 오늘날 개방화시대에도 유사한 대립과 경쟁이 예견되고 있다. 미국·일본은 해양세력이고, 중국·러시아는 대륙세력이다. 우리나라는 그 교량적 위치에 놓여 있으며, 북(北)은 대륙에, 남(南)은 해양에 더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냉엄한 국제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경제력·국력을 강화해야 하며 이에 못지않게 외교·안보태세의 확립이 중요하다. 최근 북핵문제·주한미군 유연성 등의 문제로 한·미동맹에 간격이 생기고, 독도문제 등으로 한·일관계도 악화돼 가는 데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일의 견고한 우호관계는 북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평화, 동북아의 평화 정착의 대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현명한 길,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갈 수 있길 바란다.

최기선 객원논설위원 (인천대 석좌교수)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