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가 큰일났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한미관계, 한일관계, 북핵문제 등이 꼬이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는 독도문제로 외교전쟁을 선포했다. 미국 라이스 국무장관의 동북아 3국 방문 길에 한국을 잠깐 다녀가면서 보인 행보는 한미동맹관계에 금이 가고 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북핵문제도 6자회담을 통해 평화적으로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북핵문제 해결에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북한 대신 한국 편을 들어줄 것 같지도 않다. 내부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자주외교 노선의 각을 날이 갈수록 더 날카롭게 세우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은 더 이상 `한, 미, 일 남방 3각동맹에 갇혀 있을 수는 없다'며 `동북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자주외교 노선은 바람직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노선은 분명하다. 자주외교를 통해 동북아의 세력판도를 바꾸는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주외교를 누가 반대하겠는가. 동북아 세력판도를 우리의 의지대로 바꾸겠다는 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국가의 외교정책 목표의 하나로 자율성을 중요하게 취급한다. 주권국가로서 타국의 간섭이나 개입 그리고 종속상태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으로 국가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외교정책 목표라고 볼 수 있다.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에 외국군이 주둔하고 전시 작전지휘권까지 넘겨준 상황을 누가 좋다고 하겠는가. 국가의 대외적 자율성이 극도로 위축되었던 상황에서 자주외교 노선을 천명하는 것은 국민의 마음을 솔깃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동북아에서는 미국과 새로운 동맹관계를 다지고 있는 일본이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고 있으며 국제적인 영향력과 위상을 높이려 하고 있다. 중국은 21세기 동북아의 패권적 지위, 더 나아가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 용트림을 시작한 지 오래다. 러시아도 종이호랑이라고 만만하게 볼 수 없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틈새에 놓여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각축장이 된 쓰라린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 볼 때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로 지역판도를 바꾸겠다는 원대한 포부에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국제사회에서 자주외교를 통해 국가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수행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이다. 국제체제이론에서 균형자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조건은 중재자와 균형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다. 한국이 그런 힘과 외교적 역량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특징으로 하는 무정부 상태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힘의 뒷받침 없이는 자주외교도 균형자 역할도 모두가 공허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북한과 손잡고 일본과 등지고 미국과 동맹을 파기하고 중국과 친해지려고 하면서 동북아에서 세력 균형자 노릇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힘이 뒷받침되는 승부수여야

문제는 그런 능력도 없으면서 상대가 있는 외교문제에 관해 허장성세를 부리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고 할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주한 외교사절들이 참석한 취임식장에서 동북아 중심 국가를 선언했다가 관련 당사국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지나치게 허세를 부리면 국내용으로 치부될 수 있다.

중국이 전략적으로 힘을 숨기고 있듯이 그리고 분단 독일이 주변국들이 통일을 원치 않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통일의 `통'자도 입 밖에 내지 않고 독일 내부문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잘 알지 않는가. 국제사회에서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면승부수나 허풍은 통할 리 없다.

홍득표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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