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에 이런 기록이 있다. `뜻을 얻고 나면 잊는다. 이치를 깨닫고 나면 가르침을 잊는다. 물고기를 얻고 나면 통발을 잊고 토끼를 잡고 나면 덫은 잊는 것과 같다.' 또 초나라의 패장 종리매의 목을 들고 유방을 찾아가 자신의 충성이 변치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려 했지만 오히려 역적에 몰려 포박된 한신은 이렇게 말한다. “교활한 토끼를 잡고 나면 좋은 사냥개는 삶아먹히고 높이 나는 새를 잡고 나면 좋은 활은 감추어지며 적국을 쳐부수고 나면 부하는 버림을 받는다더니 하나도 틀림이 없구나.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이제 나는 삶아죽겠구나.” 고사성어 `토사구팽'이란 귀절이다. 전자의 이해는 근본을 얻고 나면 그 수단에 구애받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말이 후자처럼 역사속에서 `목적이 달성되면 함께했던 사람이나 사물의 덕을 잊어버린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조직속에서 유능한 부하는 늘 교활한 지도자에게 이용당한다. 지도자가 목표를 향하여 진군할 때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부하의 능력을 최고한도로 발휘토록 독려한다. 그러나 막상 목표가 달성된 뒤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는다 싶으면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쫓아내고 만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1인자의 자리는 인간을 비정하게 만든다. 난세에 필요한 인물과 평화시에 필요한 인물은 다르다. 난세에 영웅이 나오지만 태평성대에는 영웅이 필요없다. 오히려 힘있는 부하는 나라를 다스리는데 짐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현실은 비정하다. 정의를 일컬어 흐르는 물같이 냇물에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는 식이라는 사고는 순진한 오산이다. 현대 정치사에서도 그런 사례는 엿볼 수 있다. 대선전이 본격화되고 있는 이때 정치권은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의 `헤쳐모여'가 한창이다. 7선의원이며 국회의장을 지낸 김재순씨가 10년전 소속했던 신한국당에서 팽(烹)당한후 지난 27일 후신인 한나라당에 입당한 그의 변은 이렇다. “당시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한 게 아니고 토사구방(放)이었다고…” `이빨 빠진 호랑이' 처지가 된 현대정치사의 2인자 JP는 어떤 묘수가 나올지. 이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국민의 심중은 자못 궁금하다.
(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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