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내수경기 회복론과 독도 쇼크에 묻혀 어느새 뉴스의 초점을 비켜가고 있는 것 같지만 바로 엊그제까지도 한국의 경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에 빠져있다는 것이 국민 대다수의 인식이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대표적인 경제정책이 소위 뉴딜정책이라는 것이다. 그 골자를 들여다보면 아주 간단하다. 전국 곳곳에 건설판을 최대한으로 벌여 그를 통해 돈을 뿌리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돈이 뿌려지면 그 돈이 내수에 불을 지필 것이고 그러면 경기가 돌아가게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1929년 사상 최대의 공황에 마주쳤던 미국이 케인즈의 조언을 받아 진행했던 바로 그 뉴딜정책과 사실상 거의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다.

그리고 이미 이 정책은 주저 없이 실천에 옮겨져 대규모 개발계획이 속속 발표되고 있는 중이다. 그 속에는 판교 등 6개의 신도시 건설 계획을 비롯해 부산~김해간 경전철 건설, 시화호 간척지 개발 등 무려 28개의 대형 국책 건설 사업이 포함됐다. 여기에 기왕에 계획되고 있는 인천, 부산, 광양의 대규모 경제자유구역 건설 계획과 행정신도시(수도) 이전계획,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추진하고 있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무슨무슨 단지들에다 각 공기업들이 추진하고 있는 건설계획까지를 포함해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전 국토의 건설 공사장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비상한 난국 극복의 의지에 어떠한 경우에도 초를 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노태우 정권 당시에도 주택 200만 호 건설 공약으로부터 비롯된 5개 신도시 건설 사업을 경험한 사실이 있어 되돌아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 기억으로 당시 그 쇼크는 대단한 것이었다. 각종 건설관련 원자재 가격과 노임은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치솟았다. 레미콘은 돈을 싸들고 쫓아다녀도 살 수가 없었고 서툰 일용직 미장 인부를 일당 10만 원에도 구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당시 시장은 분명히 활황이었던 기억이다. 그러나 그 화려한 기억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렇게 건설된 신도시들의 조성이 채 마무리도 되기 전인 1997년 우리는 IMF라고 하는 파국에 직면하고 말았다.

물론 IMF의 원인이 막바로 5대 신도시의 건설에 있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정한 연관성을 추정할 만한 증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한 형태의 건설이 이뤄지더라도 달러의 국외 유출이 일어나게 돼 있다. 건설자재 원가의 국산화 비율이 낮고 에너지 조달 비용이 전적으로 달러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가, 요즘은 웬만큼 큰 건설공사나 토목공사는 설계부터 감리까지를 모두 외국의 전문업체에 맡긴다. 그 뿐 아니라 관공서나 특수 용도에 사용하는 시설, 고급 주거시설 등은 주요 건재를 외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해야만 한다는 낭비형 소비구조 등 원인은 얼마든지 많다. 국산으로 조달되는 것은 겨우 노동력과 자본 기회비용 정도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총 건설비용의 적게는 60%, 많게는 80% 이상에 이르기까지의 달러가 건설과 동시에 해외로 빠져 나가게 돼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출이 건설된 자산으로부터 만회돼야 하지만 아파트나 정부 청사가 그러한 수입을 올려 줄 방법이 없다. 그것은 결국 고급 외제 사치품을 수입해 낭비하는 것과 동일한 경제적인 효과를 가져 올 뿐이다. 세계 굴지의 규모를 자랑하는 인천국제공항이 그렇고 새만금이 그렇고, 타워팰리스가 그렇고, 우리 이웃의 자랑스런 초현대식 구청청사가 그렇고... 모두가 이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국민 소득은 케인즈의 방정식에 의하면 달러가 빠져 나가는 만큼 줄어들게 돼 있다.

과열된 건설이 우리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얼마든지 있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 물가의 상승, 임금의 상승, 그로 인한 수출품 원가의 상승, 자본의 건설업 편중과 이로 인한 악순환의 형성, 투기의 조장과 빈부 격차의 확대, 만성적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장, 원자재의 고갈과 자연의 파괴, 에너지의 과소비 조장, 내용년수 달성 시점에서의 미래 비용 증가 등 헤아릴 수도 없다. 이러한 비용요소를 보상하고도 이익이 남는다고 판단될 때에 개발과 건설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러한 세밀한 판단을 하고 있는가. 나중이 어찌 되건 지금 당장의 침체를 모면하고 보자는 것은 혹시 아닌가.

미국이 뉴딜정책을 쓸 때에는 수없이 많은 심각한 논쟁이 이뤄졌고, 무엇보다도 미국의 불황은 유효수요의 부족이라는 일시적 자본 순환의 병목현상이 원인이었다. 우리가 지금 그런가. 돈만 뿌리면 그 다음은 누가 책임지는가. 그 돈 가지고 다른 것은 정말 할 것이 없는가. 노태우 정권 당시 건설된 5개 도시 분당, 일산, 산본, 평촌, 중동의 개발 면적 합계가 1천500만 평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인천의 경제자유구역 계획 부지만 해도 6천400만 평이다. 정말 괜찮겠는가. 새가슴이 떨린다.

하석용 객원논설위원(유네스코인천시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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