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5일은 120년 전인 1885년 한국 교회사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항도 인천에서 기독교 최초의 선교사인 아펜젤러 부부와 언더우드의 제물포항 도착장면 재현과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인 내리교회에서 감사예배를 드렸다. 복음의 씨앗을 이곳 인천을 통해 뿌려졌다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주최 측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5만여 교회와 1천200만 성도를 갖고 있는 기독교 강국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주장대로라면 4명당 1명이 기독교 신자라는 이야기다.

기독교 발전은 지난 1970년대의 빌리 그레함 목사님 주도로 `이땅에 그리스도의 피묻은 복음을 전파하자'는 성령폭발(Explosion) 운동을 거치면서 1980년대까지 가히 폭발적 성장을 한 이후에 1990년대부터 발전 속도가 둔화되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데에는 교회 내외적으로 대부분 공감하는 사실이다.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16분이 기독교 인사이고, 개화기 초기에 선진 의료와 고등 교육기관의 설립을 통해 계몽운동을 펴고,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통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천주교와 더불어 기여해 온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현대사를 통해서 `민족의 희망과 등불'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기독교다. 그런데 정체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이면은 무엇이며, 세계선교를 지향하고 있는 한국 교회가 21세기를 향해 `빛과 소금'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검토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기여해 온 교회가 민주화 모습을 실천적으로 보여 줄 필요성이 제기된다. 교파마다 조금은 다르지만, 장로교 기준으로 공동의회가 있는데 그 기구는 극히 형식적이다. 무슨 안건이 있을 때 제시하라고 해서 이야기 하면 그 사람은 그 순간부터 눈총의 대상이 된다. 한국 교회마다 `겸손과 순종'을 유난히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의미보다는 담임 목회자의 목회 방침에 무조건 따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목회자의 방침이 옳은 방향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시간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언젠가는 곪아 터지기 마련이다.

둘째로, 교회 운영과 재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긴요하다. 한국 교회처럼 구약 39권 중 마지막인 `말라기' 구절을 인용하면서 십일조를 유난히도 강조한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십일조 때문에 한국 교회가 대형화 되고 성장한 바탕이 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십일조 이외에도 각종 감사헌금 명목으로 걷힌 금액의 사용처가 투명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상존한다. 헌금의 사용 용도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는 담임목사와 재정담당 몇 명에 불과한 현실 속에서 교회 내의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만무한 실정이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교회가 빈부격차의 심화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도시교회와 농촌교회의 차이는 우리 사회의 도·농격차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동일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의 현저한 소득 차이는 합리적이고 상식선 상에서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다.

넷째로, 교회가 사회구제에는 소극적이란 지적이 있다. 일부 중대형 교회에서는 교회는 사회구제나 봉사를 하는 곳이 아니라고 미리 선수를 치는 경우도 있다. 황금률(Golden Rule)이라고 하는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Love your neighbours as yourself)란 말에는 무엇으로 대응할지 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복음과 부활의 신앙을 가진 기독교가 교회 일치 운동(Ecumenical Movement)이 절실하다. 크게 교파(denomination)를 분류해 보면 장로교(Presbyterianism), 감리교(Methodism), 침례교(Baptism), 성결교(Holiest), 순복음 계통의 오순절(Pentecost) 등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도 너무 많은 분파(sections)가 난립하는 실정이다. 어느 교파 같은 경우는 족히 수백개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근세 이후의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한 한국교회가 초대교회 정신으로 회복하는 부단한 자기성찰을 통해서 세계 선교를 향한 역동적 비전을 실천적인 모습으로 가시화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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