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등 대선주자들이 대선자금 지출내역을 공개했다. 대선 유권자연대측과 매주 지출내역을 밝히기로 약속한데 따른 것이다. 물론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된 대선후보들의 자금지출 내역을 액면 그대로 실제 지출총액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지금까지의 정치권 대선자금의 관례로 보면 이번 대선부터 유독 모금이나 지출과정이 일거에 투명해졌다고 믿기가 쉽지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말썽도 많고 의혹도 많았던 정치권의 대선자금 내역이 통상적 경비나마 유권자들에게 공개되기 시작한데 대한 의미 부여에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같다.과거 `무덤까지 안고간다'는 식으로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정경유착과 매표공작등 온갖 비리의 출발점으로 인식되어온 대선자금을 햇빛 아래 끌어내는 단초가 열린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실제 각 후보진영이 공개한 자금내역은 지출규모의 차이가 눈에 띄긴 하지만 특별히 어둡거나 음습한 구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나라당이 첫 공개한 11월 27일부터 지난 3일까지 일주일간의 지출내역중 큰 항목은 정강정책등에 대한 신문.방송광고 비용 등이 차지하고 있고, 3일 지급된 14억5천600여만원 상당의 선거사무원 수당이 눈에 띄는 정도다. 민주당 노후보측도 지출규모는 한나라당보다 적지만 유세차량 임차,제작비 등 선거용 장비구입이나 기타 경비 위주로 짜여있다는 점에서 역시 별로 특이한 점은 없어보인다. 총 예상 선거자금을 25억원 안팎으로 잡고있는 민주노동당은 법정홍보물과 광고비에도 쪼들리고 있는 실상이 한눈에 드러나고 있다. 이런 정도로 각 후보진영이 투표일까지 대선비용을 지출한다면 과거 수천억대를 상회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이 왜 필요했는지 의아할 정도다.유권자들이 느끼는 체감비용과는 거리가 크다는 얘기다.

이렇게보면 결국 대선자금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는 공식적으로 허용된 법정지출한도에 맞춰 분식된 자금지출 내역의 형식적 공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막판 돈살포 등 과거의 어두운 선거전 양태에서 탈피하겠다는 각 후보진영의 분명한 각오와 실질적 노력 없이는 일상 경비수준의 대선자금 공개는 그저 포장용에 불과할 뿐이다. 시민단체들의 압력 때문이든 어떻든 대선자금 공개가 시작된 이상 짜맞추기식으로 만들어진 수치들을 마지못해 공개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될 일이다. 실제 정치권이 구태와 잡음, 비리와 유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천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대선자금 문제에 각 후보진영이 떳떳할수 있어야 비로소 그들이 하나같이 구호로 내걸고 있는 정치개혁은 출발점에 설 수있는 것이다. 대선후보들의 이런 각오와 자세가 자금 지출내역에서 읽혀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공개내역의 진정성을 선거감시기구와 유권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엄격한 감시체계의 확립도 필수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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