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31일 구한말 민족교육에 힘을 쏟고 상하이 국민대표회의 의장으로 활동한 김동삼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1878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김동삼 선생은 1907년 유인식 선생과 협동학교를 설립·운영했으며, 경술국치를 당하자 1911년 서간도로 망명해 신민회 동지들과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설립하는 등 독립군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913년에는 재만 한인 자치기관으로 부민단을 조직하고 신흥강습소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백서농장을 개설, 둔전병(평시에는 토지를 경작하여 식량을 자급하고 전시에는 전투원으로 동원되는 병사) 방식의 독립운동 전략을 폈다.

3·1운동 직후에는 부민단을 한족회로 개편하고 서로군정서를 조직해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섰으며, 1922년 통군부를 대한통의부로 확대 개편해 만주지역의 독립군단체를 재건했다.

독립운동세력의 통일을 위해 1923년 1월 상하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자 서로 군정서 대표로 참가, 의장으로 피선됐다.

1924년 조직한 정의부 대표로 참의부, 신민부, 정의부 등 3부를 통합해 민족유일 당촉진회를 설립하려던 뜻이 좌절되자 정의부를 그만두고 혁신의회를 조직, 신민부 군정세력과 1930년 만주 한국독립당을 결성해 고문을 맡았다.

1931년 9월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북만주로 이동해 강력한 항일 무장투쟁을 계획하다가 하얼빈에서 일본영사관 경찰에 체포돼 평양지방법원에서 10년 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7년 4월13일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