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정치이론은 민본주의에 의거한 왕도정치를 펴는 것이어서 전국시대 제후 군주들에게 백성을 위한 인정(仁政), 즉 민본주의 정치를 역설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서양의 로마 역사에서는 시민들이 귀족들과 투쟁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찾았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유럽의 민주주의 정신도 그 근원을 로마의 고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주고 있다. 즉 B.C. 7세기경에 도시국가로 건국된 로마는 처음엔 선진 문화를 지닌 에트루리아인(人)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B.C. 510년경 지배하던 에트루리아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펴 나간다. 그러나 넓은 토지를 소유한 귀족들이 정치 및 사회상의 모든 권리를 향유한 반면 대부분의 소작과 자작농인 평민들은 국정은 물론 관직에 나설 수 없고 귀족과의 결혼도 금지돼 있었다. 그런 가운데 평민의 수는 늘고 그중 상공업으로 경제적 실력도 갖게 되는 데다 평민보병들로 전투의 중심이 되지만 참정권이나 관직이 허용되지 않자 불만이 고조된다. 마침내 B.C. 494년 평민들은 로마시 부근 성산으로 옮겨가 그곳에 평민의 신도시를 건설하려 했다. 평민을 잃으면 귀족도 존립이 위태롭게 될 것이니 귀족의 원로인이 타협해 평민 2인으로 되는 호민관을 두기로 했다. 이들에게 불법으로 압박받는 평민을 보호하며 입법, 행정조치를 부인하는 절대 권한을 인정케 했다. 그러나 사법권을 쥔 귀족이 관습법을 악용해 평민을 압박하자 평민은 성문법제정을 요구하여 B.C. 449년 12표법을 제정해 광장에 걸어 만민을 보게 했다. 이는 로마의 가장 오랜 성문법으로서 평민은 귀족과 평등한 권리가 보장된 것이다. 끊임없는 인권평등의 투쟁속에서 로마시민의 가슴속에는 `인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어야 한다'는 신념이 심어졌다. 이는 라틴어 그대로 오늘날 미국 미주리주의 모토로 쓰여지고 있다. 이후에 귀족과 평민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논쟁끝에 이른바 리키니우스 섹스티우스법(法)이 가결됨으로써 평민은 귀족과 법률상 완전히 평등한 시민권 행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대통령 후보들이여! 민권선정을 명심하자.
(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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