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동안 엽기적인 용인 부녀자납치 연쇄살인사건과 택시를 가장한 여성승객 강도살인사건, 친딸을 자신이 일하는 업소에 취업시킨 뒤 화대를 챙긴 반인륜적 사건, 카드빚으로 인한 각종 강력범죄가 우리사회를 어둡게 했다. 특히 군조직 내부에까지 카드빚 범죄가 침투하면서 발생한 현역 상사의 총기강도사건은 `플라스틱 머니' 빚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지난 10월11일 오후 3시55분께 포천군 영북면 운천리 영북농협에 K-1소총을 들고 복면을 한 남자 1명이 침입, 창구에 앉아 있던 여직원(35)에게 녹색학생용 가방을 건네며 “돈을 담으라”고 요구한 뒤 현금 2천500여만원을 털어 달아났다.

범인은 농협에 들어서자마자 공포탄 1발을 천장에 발사, 직원들을 위협한 뒤 돈을 빼앗아 달아나다 마주친 40대 주민과 뒤쫓던 농협 과장에게 실탄을 발사, 중상을 입히고 연막수류탄까지 터뜨리며 미리 세워놓은 승용차를 몰고 달아나는 등 범행이 신속·치밀했다.

경찰은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용의자가 모두 3명으로 추정하고 `범행당시 훈련받은 군인의 자세로 총을 발사한 점'과 `연막수류탄까지 터뜨린 점' 등으로 미뤄 범인이 군인일 가능성에 대해 무게를 두고 군부대와의 공조를 통해 수사를 벌였으나 주로 목격자들의 제보에만 의존하는 성과 없는 수사가 이어졌다.

사건발생 6일만인 10월17일 포천군 모 군부대 헬기장 기슭에서 범인이 사용했던 국방색 복면과 가방, 운동화 등을 발견한 경찰의 수사는 탄력을 받는 듯 했으나 별도 수사본부를 차린 채 공조수사를 벌이고 있는 군부대측의 소극적 협조로 수사의 난항이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유용한 단서로 활용할 수 있는 용의차량과 범행 당일 포천 일대의 휴대폰 통화내역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모 렌터카에서 범행차량과 연식이 같은 차량을 빌린 육군 모 사단 소속 전모(31)상사로 집중, 군측에 협조를 요구했으나 군은 간단히 `혐의없다'는 통보로 일축해버리고 말았다.

특히 휴대폰 통화내용을 통해 전 상사가 범행시간 전후 수차례 영북면 일대에서 휴대폰 통화를 한 사실과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 등을 확인한 경찰이 전 상사를 용의자로 다시 지목, 검거 전날인 10월26일 군부대에 재협조를 요구했으나 재차 `혐의없다'고 통보한 것도 수사의 장기화 및 미궁에 빠지게 할 수도 있었던 군측의 어이없는 태도라는 지적이다.

경찰은 결국 휴대폰 통화내역 등을 증거로 제시, 전 상사를 붙잡아 범행일체를 자백받았으며, 5개 신용카드사에 연체된 1천200여만원의 빚과 가정불화가 빚어낸 범행으로 드러나 큰 충격파를 던졌다.

전 상사 개인의 범행동기가 무엇이든 군의 명예를 실추시킨 이번 사건이 성실하게 국방의 임무를 수행하는 대다수 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군기강 해이와 총기관리 부실에 대한 군 당국의 철저한 재점검은 물론 군·경 공조수사 체계에 대한 시급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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