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진시대에는 노장사상이 널리 퍼져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속세를 떠나 청담을 즐기는 풍조가 유행했다. 그러던 중 글재주 좋은 손초라는 젊은이가 벼슬길에 나가 상사들의 눈치나 보기보다 차라리 산천에 들어가 자연을 벗삼아 고고히 지낼 생각이 일었다. 그래서 한번은 친구 왕제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난 말이야, 구질구질하게 세속에서 바둥대며 살아가기보다 차라리 돌을 베게 삼고 계곡 흐르는 물에 입을 가시는 곧 `침석수류(枕石漱流)'하며 살고 싶단 말이야”라고 말한다는 게 그만 말이 헛나와 “수석침류(漱石枕流:돌로 입 가시고 흐르는 물을 베게 삼다”라고 말해버렸다. “허허 자네, 어찌 물을 베게 삼고 돌로 입을 가신다는 말인가?” 아차 실수했다고 느꼈지만 자존심이 강해 지기싫어하는 성미인지라 얼른 둘러대어 “모르는 말씀! 물을 베게 삼는다는 건 속세에서 더러워진 귀를 씻겠다는 말이고, 돌로 입을 가신다는 건 이를 닦는다는 뜻일세”라고 우겨댔다. `세설신어'의 언어편과 진서의 손초전에 나오는 일화다. 손초는 그런 승벽때문에 세상에 잘 어울리지 못하고 지내다가 40세가 넘어서야 친구 왕제의 추천으로 진동 장군 석포의 참모로 있으면서 석포를 위해 오왕 손호에게 보낸 항복의 권고문 등을 쓰기도 했다. 손초와 같은 억지의 자기 변명을 우화로 다룬 이야기는 이솝 우화집에도 나온다. 어느 굶주린 여우가 먹이를 찾아다니다가 마침 포도송이가 먹음직스레 주렁주렁 달린 넝쿨 밑을 지나게 됐다. 옳거니 침을 꿀꺽 삼키고는 포도송이를 향해 수차례 있는 힘을 다해 뛰어보았으나 도무지 입에 닿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원망스레 눈을 흘기며 그곳을 떠나면서 혼자 느물거렸다. “쳇, 저건 아직 익지도 않았잖아.” 모두 지기싫어하는 억지다. 자기의 무력함을 감추고 남에게 핑계를 돌리는 습성이다. 요즘 대선 후보들 진영에서 나오는 상대방 헐뜯기도 가소롭지만 후보들간에 이랬다, 저랬다 한 정견을 그럴듯하게 미화해 버리는 유세현장과 TV토론 모습은 더 가관이다. 실수는 하게 마련이다. 시인할 줄 모르고 억지를 앞세우면 큰 오산이다.
(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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