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면서 어떤 목적이든 현실보다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뜻한대로 이뤄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역경을 맞을 때도 있게 마련이다. 인생의 길흉화복이 무상하여 예측할 수 없다는 말로 `인간만사새옹지마'란 고사성어가 있다. 북방의 한 노인이 있었는데 한번은 그의 말이 아무 까닭없이 오랑케 땅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웃사람들이 노인을 위로했다. 노인은 조금도 아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달아났던 말이 준마를 달고 돌아왔다. 이번엔 이웃들이 부러운듯 축하했다. 그러나 노인은 기쁜 기색없이 덤덤하기만 했다. 어느날 준마를 타며 즐기던 아들이 낙마해 다리가 부러졌다. 이웃에서 물론 노인을 위로했다. 그때 노인은 슬픔보다 “아들의 불구가 도리어 행운이 될지 뉘 알겠느냐”며 자위했다. 1년쯤 지나 오랑캐들이 쳐들어오자 모든 젊은이들은 징집되어 대다수가 전사하는 참혹상을 낳고 말았다. 하지만 노인의 아들은 절름발이 탓으로 징집되지 않아 목숨을 보존할 수가 있었다.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되는 조화는 그 끝을 헤아릴 수 없고 그 깊이를 잴 수 없음이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속에서 화가 복의 원천으로 변천해 가는 사실이 구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을 더듬어 올라가면 야곱이라는 어른이 나온다. 야곱은 네 여인에게서 난 열두아들이 있었다. 그 중 노년에 본 자식 요셉을 끔찍히 사랑했다. 자연 형들은 곱지않은 눈으로 보던 터에 한번은 자기가 형들의 우위에 선다고 풀이할 수 있는 꿈이야기를 한 것이 더욱 미움을 사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양치러 나간 형들에게 요셉이 부친의 심부름으로 저들을 찾아갔는데 미워하던 형들이 마침 이집트로 장사가는 상인들에게 그를 팔아버렸다. 이집트에서 종노릇을 하는 기막힌 운명에 처한 요셉은 성실하고 믿음성있게 일한 탓에 숱한 역경속에서 왕의 신임을 받아 총리로 임명돼 나라살림을 융성시킨다. 후일 자기를 팔아버린 형들을 기근에서 허덕이는 가나안 땅으로부터 이주케 하여 잘 살게 했다는 요셉의 노정속에서 그가 맞는 환란들이 훗날 영광을 회태한 사실을 보게 된다. 사람팔자 알 수 없다. (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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