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륜거 구르는 소리가 우뢰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이는 1899년 9월8일 경인선 첫 개통을 알린 독립신문 기사다. 철도는 국토개발의 파이프라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철길의 통과 여부에 따라 명암이 크게 엇갈린 대표적인 사례가 충북 충추와 경북 김천이다. 첫 설계당시 경부철도 노선은 `서울∼충주∼안동∼경주∼울산∼부산'으로 결정되었으나 충주지역 유림들은 “열차의 검은 연기가 벼농사를 망치고, 조상들의 영혼이 놀랜다”며 극력 반대해 결국 교통 요충지란 옛 명성을 잃고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 `금전'이라는 조그만 시골마을에 불과했던 김천은 경부철도가 놓인 후 교통도시로 급성장했다. 이렇듯 경제발전에 지름길이 돼 온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는 제물포와 노량진을 잇는 경인선으로 33.2㎞ 구간이 개통되고, 이듬해에 한강철교의 준공과 더불어 지금의 서울역까지 연장됐다. 경인선의 부설을 계기로 우리나라 철도의 부설권을 장악한 일제는 경부선을 1905년에 개통했으며, 1904년에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병력 및 군수품의 수송을 위한 군용철도로서 서울∼신의주간의 경의선과 마산∼삼랑진간의 마산선을 1905년과 1906년에 개통했다. 경부선과 경의선의 남북종관철도는 1911년에 압록강철교가 완공됨으로써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국제 철도의 일부가 된 것이다. 최근에 열린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경의선 착공시기를 추석 직전으로 잡는 데 양측이 어제 극적으로 합의했다. 아울러 연말까지 개통키로 해 연내 개통이 된다는 점에서 남북교류협력과 남북화해 분위기 형성에도 획기적인 진전이 기대된다. 금강산관광이 개방된 데 이어 황석영의 장편소설 장길산의 배경지로 알려진 구월산 관광 또한 눈앞에 다가온 듯 싶어 많은 국민들의 감회를 새삼스럽게 할 것 같다.
(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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