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중구 자유공원은 구도심권인 인천역 부근과 월미산, 항만 등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다. 이곳 자유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인천항이 개항된지 5년만에 `만국공원'으로 명명됐었다. 지대가 높은데다 터가 넓고 숲이 울창해 산책하기 알맞아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하루종일 인근 주민은 물론 인천시민들에게 산책로로 인기가 그만이다. 봄이면 공원전체가 벚꽃으로 장식해 장관을 이루고 해마다 이를 즐기는 벚꽃축제도 펼쳐진다. 정상부분에는 놀이동산이 있었지만 1882년 4월 한국과 미국사이에 조인된 한미수호통상조약체결을 기념하기 위해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82년에 놀이공원을 수봉공원으로 이전하고 지금의 한미수교 100주년기념탑이 건립됐다. 그 이전에 자유공원 광장 동쪽 방향에는 6·25 때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57년 9월15일 맥아더장군 동상이 건립됐고 이름도 자유공원으로 변경됐다. 이 동상은 망원경을 들고 인천 월미도산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반세기 가깝게 반공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돼 왔다. 15일 오후 자유공원 맥아더장군 동상 앞에서 1개 중대 경찰과 30여명의 젊은 청년 시위대가 서로 대치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시위대는 지난 6월13일 양주군 도로에서 미2사단 소속의 장갑차가 앞서 가던 여중생 2명을 치어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하는 사고를 일으키고 미군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등을 내세워 문제의 미군들에게 일방적인 무죄평결을 내린 것에 대해 항의하며 맥아더장군 동상을 철거하라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6·25 당시 미군은 인천상륙작전을 펼쳐 빼앗겼던 수도 서울을 되찾고 북한군을 퇴각시키는 등 한국의 평화를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수했다. 이 같은 희생으로 한국에 평화를 되찾아 주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 미군들은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자신의 일생에서 마지막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맥아더장군은 하늘에서 오늘날 전국적으로 메아리치고 있는 시위와 자신의 동상앞 시위를 지켜보면서 어떻게 바라볼까 못내 궁금하다.
(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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