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해소 대책은 가장 시급한 경제분야 현안이다. 신용불량자 수가 어떻게 300만명에 육박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우선 환란 극복 과정에서 한때 100만명을 넘어섰던 실업자들이 신용불량자 양산의 주원인을 이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생계형 신용불량자들이다. 금융권의 가계 대출 확대와 정부의 무절제한 경기진작책 신용불량자 양산을 부추겼다. 재정지출 확대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고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어닥치는 와중에서 은행들이 가계 대출까지 확대하자 자연히 은행 빚을 얻어 쓰는 서민들이 늘어났다. 각종 기관에서 반복적으로 내놓은 장밋빛 경기전망도 서민 가계의 무절제를 가속화하는 데 일조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환란 이전의 금융권 부실이 지난 5년 동안 가계 부실로 전이되면서 새 정부의 가장 큰 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가계 부실이 우려할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강변해온 현 경제팀도 얼마전부터는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잇따라 가계부실 대책과 신용불량자 대책을 내놓고 있다. 가계대출 억제 및 개인 워크아웃제 시행 등이 주요 내용이다. 선거 기간 중에는 민주당이 개인 워크아웃 대상의 확대방안까지 내놓기도 했다. 수백만명이 신용불량상태에 빠졌으니 당연히 구제책을 중심으로한 특단의 대책이 시행되기는 돼야 할 것이다.그러나 경제 현안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문제도 일거에 수습할 수 있는 문제는 못된다. 민주당 발표처럼 2개 이상 금융기관의 채무액 3억원 이하인 사람들을 모두 개인워크아웃 대상으로 정해 구제에 나설 경우 구제 가능한 신용불량자들까지도 구제하지 못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우선 금융기관들의 업무처리 능력이 무려 90만명으로 추산되는 그 많은 사람들의 워크아웃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시키기에는 벅차다.여전히 부실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금융기관들이 적극 호응할 리도 없다.따라서 그런 획기적인(?) 구제책은 안쓰느니만 못하다고 본다.

정부가 당초 발표한대로 5천만원 이하 신용불량자 중에서만이라도 확실하게 옥석을 가려 합리적인 구제책을 시행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그렇게 해도 그런 구제책이 신용불량자 수를 줄여나갈 수 있는 근본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신있게 얘기하기 어렵다. 생계형 신용불량자 외에 젊은이들의 카드 남용이나 일부 신용불량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너무 깊어진 상태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통사범 사면조치 때처럼 이 경우도 자칫 신용불량자 문제를 고질화하는 부작용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신용불량자 구제책은 국가 경제 전반의 기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참을성있게 장기대책으로 시행해야 한다. 신용불량 상태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안된 얘기일지 모르지만 시장경제의 원리가 그렇고, 또 당사자들에게도 길게 봐서는 그게 약이 될 수도 있다. 또 그를 위해서는 성장에 집착하기 보다는 당분간 물가 안정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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