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31일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에 헌신한 한계(韓溪) 이승희(1847.2.19∼1916.2.27) 선생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경북 성주에서 영남 주리론의 대통을 이은 한주 이진상의 아들로 태어난 이 선생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포고문을 각국 공사관에 보내 일제의 침략만행을 규탄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른 바 을사5적 처단과 조약 파기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고 주한 일본군사령부에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는 글을 보낸 사건으로 인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자 고향에서 국채보상단연회를 조직, 각지에 통문을 보내 담배를 끊고 국채를 보상해 국권을 되찾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릴 당시 편지를 직접 보내 일본의 침략만행을 낱낱이 폭로하는 한편 헤이그 특사사건으로 고종이 폐위되자 그 부당성을 일본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다.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한 이 선생은 황무지를 구입해 100여 가구의 한인동포를 이주시켜 한흥동이라는 독립운동 기지를 개척하는 한편 한민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을 실시해 독립군 양성의 기반을 닦았다.

1910년 나라를 뺏기자 한인공교회를 창립해 상하이의 박은식 선생 등과 함께 언론기관 설립과 국사교육을 논의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1916년 70세를 일기로 중국 봉천성(현 심양) 북문 밖에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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