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후 정치개혁 바람이 거세다. 정권교체기에는 항상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온 국민이 변화에 목말라있기 때문이다. 패배한 정당은 물론 승리한 정당조차 유권자들에게 외면당했다고 느끼고 있다. 국민들은 금권정치, 지역정치, 계보정치에 진저리를 치면서 독재정권의 잔존세력과 타락한 민주화 세력을 동시에 심판한 것이다. 세월이 거꾸로 흐르는 것을 막아낸 젊은이를 중심으로 세대교체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다만 걱정없이 기득권을 즐기고 있던 정치인들만 난데없는 개혁나팔에 혼이 빠질 지경이다.

두 당의 개혁파들은 단단한 각오를 보이고 있다. 당을 새로 만드는 자세로 정치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지 알만하다. 개혁세력은 우선 돈정치부터 바꾸려고 한다. 고비용 정치는 엄청난 국고보조에도 불구하고 음성자금을 만들고 부패를 만연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앙당축소나 원내정당화, 지구당의 폐지 등을 논의하고 있다. 또한 상향식 공천이나 진성당원화 등으로 정치를 아래로부터 바꾸려는 의욕도 보이는데, 낡은 정치를 상징하는 인물들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점점 커지는 현실이다.

하지만 반개혁적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발빠른 사람들은 이미 개혁파에 가담했지만 타성에 젖은 정치인들에게 개혁은 자체로 고통인 것이다. 따라서 개혁도 좋지만 정체성을 지키면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투덜거린다. 개혁세력이 당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한나라당의 주류나 선거에서 승리한 당인데 웬 난리냐는 민주당의 주류는 똑같이 속이 끓는 것이다. 땅에 발을 딛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세월의 변화를 느끼기는 어렵다. 그런데 개혁세력이라고 퇴행적 정치구조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철새는 아니지만 말로만 개혁을 외치고 밥값을 못했던 것이다.
 
물론 두 당에서 개혁파는 소수이며 당권은 근처에도 못 갔다. 더구나 정치인이 당선가능성을 떠나서 소신껏 행동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하지만 대선에서 보았듯이 국민들은 정치적 소신과 실천을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기고 있다. 개혁의 깃발을 들었으면 흔들지만 말고 과감하게 앞장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내에서만 개혁을 떠벌리던 못된 버릇은 이번에도 되풀이되고 있다. 개혁세력은 근본적인 변화를 설계하지 못하고 자기 당의 체질개선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다. 개혁을 빙자해서 입지를 마련했다는 오해를 벗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도 말이다.
 
이제 정치인들은 철학과 신념에 따라 헤쳐 모여야 한다.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서도 사회발전을 읽어야 할 것이다. 유권자의 의식수준에 미달하는 정치인들이 설자리는 사라지고 있는데 바로 철새들의 처지가 그렇다. 철학과 신념이 없는 정치인은 이해관계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늦기 전에 정치이념과 정치노선에 따라 당을 꾸려야 한다. 정치성향이나 활동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당을 달리한다면 정치개혁은 없다. 정치개혁인가 정당개혁인가? 정치개혁이 아니라 정당개혁에 그친다면 오늘의 개혁세력은 내일 수구세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천대 이갑영교수·본사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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