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의 안색
 
김윤식/시인


인천시 중구 해안동에서 자유공원 중턱 한국회관으로 오르는 낡은 돌계단 중간쯤에 공자상이 서 있다. 가끔 사납게 짖어 대는 골목집의 누런 강아지와 층계 모서리에 노파 하나가 멍하니 그림자처럼 나와 앉아있는, 내왕하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은 한적하고 낙후한 비탈길에 왜 공자님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혼자 와서 계시는 걸까. 인천 앞 바다를 내려다보시는 걸까.

어떤 연유로 공자상을 이곳에 세우게 되었는지, 저간의 사정이나 주체를 밝힘이 없으니 아무것 하나 알 수가 없다. 기단에 적혀 있는 것은 중국 칭다오시(靑島市) 인민정부가 이 상을 제작했다는 사실과 그 때가 2002년 5월이라는 것뿐. 짐작컨대, 우리 관청과 합의가 되어 상을 세운 시기도 아마 그 무렵쯤이 아닐까 싶다. 자유공원이라면 인천상륙작전의 주역 맥아더 장군의 동상만 연상되는 우리에게는 난데없는 공자상이 여간 낯설고 어색한 것이 아니다.

최근의 형편을 보면 인천시 전체가 중국과의 교류에 있어서 중심지가 되기 위해 법석을 피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세계 조류'가 그렇고 시류가 그렇다면, 그리고 그것이 우리 인천의 이익이며 나아가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라면, 싫든 좋든 지정학적 이유로 일백 이십년 전부터 청관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인천이 대 중국 전진 기지가 되는 일에 새삼 거부감을 느끼거나 반대할 마음은 아니다. 관광자원으로서도 그렇다. 그래서 북성동 동사무소가 중국집이 되고 한국인 거리가 황금룡(黃金龍)의 치장물로 뒤덮히는 야단이 나도 그저 감탄, 감탄하며 자장면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자의 석상을 세운 발상의 기저에는 이러한 `시류'가 편승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법석의 하나로 눈에 비친다. 공자라면 사실 오백년, 아니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적어도 이천년 이상을 직간접으로 우리의 정신 세계, 사고 체계를 지배해 온 분이 아닌가. 그것은 중국도 마찬가지이리라. 보라. 그 위대한 유(儒)의 지극히 말단 한 부분만 해도, 세월을 두고 흘러내리면서 심지어 제사상의 과일 접시 하나조차 엄격히 통제하는 정도가 아니던가. 그러니 우리 삶에 있어서 맥아더보다 공자가 백배 천배 가까운 관계에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모르긴 해도 그러한 역사가 공자 모습의 석상을 세우게 한 근본 까닭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국자들은 아마 이런 생각들을 했을지 모른다. 공자는 두 나라 국민의 의식을 지배해 온 정신적 지주이며, 또 인류가 추앙하는 성인이니 상을 세우는 일에 대해 양쪽 모두 거부감이 없을 것이며, 그리고 이 상이 앞으로 두 나라 시민을 무궁무진 좋은 동반자로 남게 하는 매개물, 상징물로서 더없이 적합하다! 여기에 덧붙여 중국측으로서는 내심, `공자는 중국인이고 여기가 중국인 거리다'하는 메시지 전달과 함께 공자라면 기가 죽는 한국인에게 그야말로 강한 정신적 부하(負荷)를 걸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요, 또 인천쪽에서 보면 하루 빨리 성취하고 싶은 차이나타운 건설의 조바심을 앞당길 수 있는 훌륭한 조작(操作)이 된다는 점! 솔직히 말해 이것이 진짜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설명도 없이 갑자기 길바닥에 세운 이 돌덩이 인류의 스승에게서 무엇을 느끼란 말인가. 거기에 도대체 무슨 유학(儒學)의 깊이가 있고 거기에서 무슨 경건한 예(禮)가 느껴지는가. 있다면 조잡한 조경과 조악한 공사 흔적과 사려 깊지 못한 장소 선정의 안목과 경박한 법석만 있을 따름이다. 공자의 상은 차라리 좀더 공손하고 편안하게 화교학교 교정쯤에 세워졌어야 했을 것이다.

공자가 살아있다 해도 그 평생의 삶처럼 좋은 조경, 환경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대단한 치장이나 떠받들음을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 두 나라 실무자들의 단견, 한 번 잘못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이런 일을 쉬쉬하듯 `너무 조용히' 일사천리로 `너무 간단하게' 자기들 복안대로 처리한 결과이다. 그리고 그것이 꼭 청관 복원의 지름길도 아닌데 말이다.

잘 보시라. 공자님의 모습이, 그 안색이 그리 썩 편치 않아 보이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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