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 되면


연수여자고등학교 1학년 8반 성명비

녹슬은 경의선이
오랜 휴식으로부터
깨어나게 되는 날,

더운날 갈증과도 같았던
통일路가
성냥갑같은 승용차들로
교통체증을 겪게 되는 날,

백지한장에 불과하는
대립된 이념 따위가
우리 몸 속의 뜨거운 피를
더 이상
반으로 가를 수 없게 되는 날,

개마고원의 웅장한 기운이
민족의 물결로 다가와
하늘을 닮은 백록담 수면을
잔잔하게 흔들어 놓을 그 날에,

고독한 향수조차도,
가슴 저미도록 그리운
핏줄조차도 없는 우리 아버지는
헛헛한 기쁨을 느끼겠다.

환희하는 실향민들과
너무도 늦어버린 재회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이산가족들 사이에서
우리 아버지는,
이념도 사상도 전쟁도
모르는 핏덩이였던
우리 아버지는,
환호하겠다.

스스로조차
느끼지 못할 허전함 속에서
그렇게 기뻐하겠다.
그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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