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통용되는 자연관에 대한 상식 가운데 하나가 서양이 공격적이며 정복적인 데 비해 동양은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서경」이나 「시경」「논어」「맹자」 등 중국고전은 하나같이 중국역사의 시작이 곧 자연과의 싸움이었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전설상 임금인 순의 신하들 가운데 우(禹)는 황허(黃河)의 범람을 훌륭하게 다스려 나라를 이어받았고, 익(益)은 산과 들에 불을 놓아 살 땅을 개척했다. 공자와 맹자 또한 입만 열었다 하면 부(富)를 주창했다. 오죽하면 공자가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을까?

따라서 동양의 자연관이 서양의 그것에 비해 환경친화적이라는 말은 실상을 오도, 은폐할 뿐이며 끊임없는 정복의 역사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다양한 중국 사상 가운데 현대적인 생태학과 비근한 도가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명청 시대를 중심으로 중국 환경사를 개척하고 있는 정철웅(44)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우선 동양의 자연관에 대한 이러한 상식파괴에서 출발해 「역사와 환경-중국명청 시대의 경우」(책세상)라는 주제를 전개해 나간다.

그는 기술발달이 인구증가와 환경파괴를 가져왔다는 지배적 견해를 도치해 인구증가가 기술발달을 초래한다는 새로운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현재 중국의 환경문제를 접근한다.

예컨대 양쯔강(揚子江) 일대 둥팅호(洞庭湖)라는 호수만 해도 그렇다. 현장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을 포함해 수많은 시인.묵객이 그 아름다움을 읊은 이 호수는 지금 면적이 5천600㎢에 달하지만 명나라 때는 두 배나 됐다.

왜 절반으로 줄어들었을까? 명나라 중기 이후 그 상류지역에 대한 무분별한 산지개발로 토사가 씻겨 내려간데다 호수 주변을 논밭으로 개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둥팅호 범람은 인간 스스로가 초래한 재앙이다. 특히 인구증가는 환경과 자연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국인구는 통계자료에 문제가 많아 확신할 수 없지만, 중국역사의 황금기라는 청나라 강희제-옹정제-건륭제(1661-1796) 연간에는 2억명, 3억명을 차례로 돌파했다.

이러한 중국을 일컬어 어느 역사가는 세계경제를 빨아들인 블랙홀이라 했다.

중국 당대인들은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조처를 취하곤 했다. 청대 중기에는 수질오염이 심각해 독약을 풀어 고기잡는 행위를 금지했고, 봉산(封山)이라 해서 입산금지 정책을 쓰기도 했다. 물론 둑을 축조하는 등 대규모 수리사업도 있었다.

여하튼 명청시대 중국사에서 본 환경과 개발 문제는 마침 태풍 한 방으로 온나라가 마비되다시피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예컨대 중부지방의 동맥이라 할 수 있는 한강은 둥팅호가 그랬던 것처럼 조선 및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무분별한 상류 산지개발로 하상(河床)이 높아졌을 것이다. 176쪽. 4천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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