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새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는 성명서를 냈다. `비판적 협력과 감시라는 시민운동 본연의 긴장관계'가 그 내용이다. 이 정권 초기에 감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데 대한 자성과 함께 내놓은 이런 다짐의 내용은 물론 원론적인 면을 재확인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그동안 많이 무뎌진 모습을 보여온 것 또한 사실이기에 경실련의 새각오에 적극적 지지와 함께 관심을 보낸다. 경실련의 행보에 대한 시민들의 감시도 더욱 매서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현행 체제를 존속하기로 결정하고 22일부터 회원들을 상대로 모임 명칭의 변경여부를 정하기 위한 전자투표에 들어 간다는 소식이다. 모임 명칭은 당연히 바뀌어야 할 것이다. `노사모'는 대선 전에나 가능한 한 모임의 이름일 뿐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하는 시점부터는 걸맞지 않은 명칭이기 때문이다. 노 당선자는 이제부터는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할 위치다. 특정 단체가 독점적으로 `사랑하는' 대상인 것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노사모가 바라는 일도 아닐 테고 노 당선자에게도 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명칭이야 그렇다치고 새 진로를 모색하는 일이야말로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정치 개혁 등이 이 모임의 본래 목표라고는 하지만 명칭 그대로 정치인 노무현을 지지하는 특수한 성격의 모임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단체가 노무현 정권이 잘못 나갈 경우 경실련의 각오처럼 가차 없이 비판을 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시민단체로서의 한계 가능성을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사모 내 일부에서 우려한 것처럼 자칫 권력화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자는 얘기다. 그래서 존속의 명분으로 내세운 `정치개혁의 버팀목' 역할을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애정의 연결고리'를 끊고 경실련 각오처럼 `노무현을 비판(협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거듭나는 게 차라리 바람직한 일이 아닌지도 생각해볼 만하다. 그래야 노 당선자가 TV토론에서 밝힌 "제 2, 3, 4의 노무현을 찾아 또 한번 국민적 정치적 스타를 만드는 일"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노무현만을 사랑하면서' 어떻게 노무현 대통령의 정적까지를 포함한 광범위한 인사를 대상으로 정치적 스타를 발굴하는 작업을 벌일 수 있겠는가.

노 당선자가 "선진국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참여민주주의의 화려한 꽃"이라고까지 극찬한 노사모는 선배격인 경실련의 깊은 자성의 모습을 눈여겨 보기 바란다. "일정부분 정부에 의해 포섭당한 뼈아픈 경험을 갖고있으며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정부주도의 독점적 민간기구가 얼마나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인가를 알게됐다"는 내용이다. 경실련의 참회는 다음과 같은 각오로 이어진다. "노무현 정부는 공약 내용이나 인적 구성으로 볼 때 김대중 정부보다 훨씬 더 시민운동과 가까울 수있는 정권이지만 무비판적 지원은 또 다른 실패 정부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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