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들이 재판을 하면서 가장 고심하는 부분이 `증언의 신빙성'문제라고 한다. 형·민사사건을 막론하고 물적증거가 충분치 못할 경우 대부분의 사건들이 증인의 증언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증언의 인정 여부에 따라 유죄와 무죄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증언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증인의 주관적인 확신에 의한 것으로 반드시 `정확성'과 일맥한다고 단정할 수 없어 이 점에서 법관들이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형사사건에 있어서는 특히 `증거재판주의'가 절대적인데 설령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사건과 관련한 직접증거가 없는 경우 법관들은 간접증거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것인가를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증거 없이는 죄가 없다'는 증거재판주의 원칙을 상기시킨 사건으로는 단연, 지난 95년에 발생한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치과의사이던 이모씨가 자신의 아내와 딸을 살해한 뒤 불을 지른 혐의로 구속돼 무려 6년간 재판을 받았으나 결국은 증거가 없어 무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간접증거를 둘러싸고 검찰과 법원은 물론 국내·외 법의학자간에 치열한 논쟁을 일으켰었다. 당시 검찰은 이씨에 대한 가장 중요한 유죄 증거로 이씨의 부인과 딸이 숨진 시간이 이씨가 집을 나서기 전이라는 법의학적 정황증거와 범행동기로 내세운 이씨의 아내 불륜사실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재판부는 `법관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엄격한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며 형사소송법상 대원칙을 들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 사건은 `한국판 O.J 심슨사건'으로 불리면서 무죄판결에 따른 논란이 일었지만 법조계에서는 증거재판주의의 표본처럼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최근 들어 인천지법에서도 범죄에 대해 더욱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는 판결들이 잇따르고 있다. 증거불충분이 주된 이유인데, 수사기관 입장에서야 뚜렷한 물적 증거가 없는 경우 심증이나 법의학적 정황, 범행동기 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고충을 얘기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거없이는 죄를 확신할 수 없다는 재판원칙은 `한 사람의 억울함에 귀 기울여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설득력을 잃지 않고 있다.
(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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