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뀔 때마다 습관적으로 자문하지만 언제나 스스로 답변이 명쾌하지 않은 평생의 의문이 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하는 지극히 허무한 물음이 그것이다. 이 물음이 내게만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전 인류 역사를 관류하는 진부한 주제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에이 그깟 반성 모른 체하고 그냥 사는 대로 살아보자”고 개혁적(?) 반발도 해보지만 역시 이 물음의 완고함으로부터 탈출한다는 것이 손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앞에 닥치는 일들을 놓고 그리 해결을 주저하는 편도 아니고, 제법 정리된 인생관을 가지고 사는 양 행세하기도 했던 것에 비추어보면 왜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지 스스로 답답한 일이다. 매일 매일의 합이 일생이 될 터이고 보면 이것은 오차의 문제인가, 소위 합성의 오류라는 것인가. 가치관의 가변성의 문제일 듯도 하고 언어의 무력함에 의존하는 인간 논리의 한계일 듯도 하다. 어찌되었건, 나날을 잘 달렸다고 해서 일생을 잘 달렸다고 평가되는 것이 아닌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망망한 대해를 항해하는 선장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강력한 엔진과 튼튼한 구조의 선박과 잘 복종하고 부지런한 승무원들이 있다면 충분할까. 물론 그러한 조건이라면, 배는 매일 매일의 항해를 잘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파도나 불순한 날씨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고 예기치 않은 사건들에도 잘 대처해 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 배의 선장이 도달하여야 할 항구를 알지 못하고 해도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더욱이, 그 배의 키가 손상되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면 그러한 잘 나가는 항행이 보장될 리도 없으려니와 항해 자체가 무의미한 달리기가 될 것은 재론의 필요가 없다. 제 아무리 빠르게 잘 달린들 목표에서 빠르게 벗어날 뿐인 항해를 우리는 방황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요컨대, 배는 선장의 분명한 목표지에 대한 인식과 제대로 동작하는 키만 갖춘다면, 조류와 바람에만 의지해서라도 의미있는 항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섣불리 시간의 다툼을 긴 역사의 진행에서 강조하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삶의 진행에서 의미 있는 것은 바람직한 목표의 설정과 그 목표를 향한 부단한 조정일 것이다.
 
또한 전세 낸 선박의 목표지는 당연히 탑승객의 합의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만일 그러한 합의가 명료하지 않을 때, 그가 유능한 선장이라면 그러한 탑승객의 무능을 핑계로 목표 없이 마음대로 바다를 표류하며 시간가기 만을 기다리거나 자신의 선장으로서의 권위만을 누리면 된다고 처신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다양한 주문이 쏟아지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혜와 정보를 제공하여 그들 모두에게 가장 유익한 목표지를 선정할 수 있도록 돕고 마침내 의미있는 항해로 끌어갔을 때 우리는 그의 유능함을 칭송하게 될 것이다. 어디로 가는 배에 탔는지도 모르는 채 마구 내닫기만 하는 뱃가에 기대어 내 배는 잘 간다고 산타루치아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를 현명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나라의 명운을 일 개인의 일생에 비유하는 것이나 정부의 역할을 선장의 역할에 견주는 것에 적지 않은 부적절함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상호간에는 많은 공통성이 있음 또한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움직임이 방향을 가져야 하며 그렇지 아니할 때 무의미와 방황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루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쏟아지는 많은 개혁적인 소신들이 연일 각종 보도매체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리고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가 확고한 의지와 강력한 실천이다. 배가 잘 나가는 것을 나무라거나 걱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우리 국가 공동체(때로는 민족공동체)의 목표는 확실히 결정되었는가 하는 것이며 누가 또는 어떤 집단이 그 키를 확고하고 충직하게 잡고 있느냐, 우리에겐 과연 그런 키가 있는 것이냐 하는 의문을 지금쯤 한 번 짚고 싶은 것이다. 또한 국가의 목표는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합의에서 나오며 그 항해의 키조차도 그들 스스로 만든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합의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목표의 설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는 개혁이니 보수니 하는 용어 따위로 이분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린 모두 이 땅에서 길게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제발 독선적 서두름이 이 땅을 허무하게 지배하지 않기를!

하석용 유네스코 인천광역시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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