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한 가운데 120여만명이 모여사는 하와이는 지난 59년 8월21일 미국의 50번째주로 합병돼 하와이주가 본명이다. 우리나라 신혼부부가 가장 선호하는 신혼여행지로 호놀룰루시가 자리잡은 오하우 섬을 비롯해 점점이 흩어진 137개 섬 하나 하나가 세계인들이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휴양지로서 손색이 없다. 하와이 하면 미국을 태평양전쟁에 끌어들인 진주만과 호놀룰루시 중심에 자리잡은 와이키키 해변이 연상된다. 진주만에 가보면 당시 공습당한 지역을 국립묘지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알리는 것은 물론 훌륭한 관광상품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매년 800여만명이 다녀간다는 와이키키 해변이 인근 섬에서 모래를 퍼와 인공적으로 조성된 해변이며 지금도 3년에 한번씩 모래를 보충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그러나 이 같은 하와이가 우리에게는 미주 이민사와 독립운동사의 산실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깝다. 미주 이민사는 1902년 12월22일 우리의 선조 124명이 인천의 제물포항을 떠나 이듬해 1월13일 102명이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중간에 오사카와 호놀룰루에서 22명이 건강 등의 이유로 되돌아 갔지만 끝까지 버틴 102명은 이 때부터 호놀룰루시를 중심으로 사탕수수밭에서 하루 70센트를 받는 노예와 다름없는 노동자로 이민사를 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102명중에는 제물포 출신 68명과 부평 10명, 강화 9명 등 인천출신이 87명이나 포함됐다고 하니 어찌보면 100년전 인천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이민사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이 같은 연유로 하와이 교포들은 지난 54년 당시로서는 거액인 15만달러를 모금해 인천과 하와이 첫 자를 딴 인하대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일당 70센트 가운데 20센트를 떼어내 독립운동자금을 만들었다고 하니 우리의 독립운동 역시 하와이가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안상수 인천시장이 인천에 이 같은 역사를 기리는 기념관을 설립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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