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002남북통일축구경기'는 93년 12월8일 말레이시아 쿠칭에서 개최된 아시아여자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끼리 격돌한 이후 9년여만의 첫 공식 남북 축구 대결이다.
 
남자 국가대표팀간 경기로는 분단 이후 9번째이며 해외가 아닌 `한반도'에서 맞붙는 것은 90년 10월 2차례의 통일축구에 이어 3번째이다.
 
남북간 대결은 일제시대 민족적 관심사였던 경평축구대회가 그 효시다.
 
경평전은 1929년 10월 경성중학이 주축이 된 경성팀과 숭실학교가 주축이 된 평양팀이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첫 경기를 가진 뒤 매년 한차례씩 서울과 평양에서 열렸으나 승부과열과 판정시비로 35년 일시 중단되는 불상사를 맞았다.
 
경평전은 해방 직후인 46년 3월24일과 26일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에서 재개됐지만 이후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막을 내렸다. 기록은 평양팀이 9승7무5패로 우위.
 
6·25 전쟁으로 한반도의 허리가 끊긴 뒤부터 70년대 초반까지는 남북 축구의 대면 기회가 없었다.
 
북한이 아시아대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은 데다 한국도 북측의 전력이 강하다는 정보가 입수될 경우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예선이나 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처럼 아예 대회에 나가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대결을 피하는 등 냉전체제의 영항 때문이었다.
 
남북이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것은 76년 5월6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18회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준결승전으로, 당시 한국은 북측의 선수 연령조작, 편파판정 등으로 0-1로 패했다.
 
두번째 대결은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제20회 아시아청소년대회 준결승. 현 축구대표팀의 박항서 감독이 주장완장을 찬 남측은 승부차기 끝에 6-5로 누르고 2년전 패배를 설욕했다.
 
국가대표팀간 첫 격돌은 78년 12월 방콕아시안게임 결승전으로 양팀은 연장 혈투까지 벌였지만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공동우승을 차지, 시상대에서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후 남북은 3번의 청소년대표팀 경기와 80년 9월, 89년 10월, 90년 7월에 A매치를 가진 데 이어 경평축구의 부활인 통일축구를 벌이게 됐다.
 
남북은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도중 그해 10월11일(평양)과 23일(서울 잠실) 통일축구라는 이름의 친선경기를 갖기로 극적으로 합의했으며 1차전은 북측이 2-1로, 2차전은 황선홍의 결승골로 남측이 1-0으로 각각 승리했다.
 
화합의 여파는 91년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 8강 진출의 결실로 이어졌다.
 
당시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단일팀을 구성, 출전했던 남북은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꺾는 등 선전속에 8강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했다.
 
남북 남자 대표팀이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93년 10월28일 카타르에서 열린 `94미국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으로 남측은 북측을 3-0으로 꺾고 북의 축하속에 본선티켓을 손에 쥐었다.
 
남자 대표팀은 역대 전적에서 5승2무1패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후 99년 평양에서 남북 노동자 친선경기도 열리긴 했지만 남북 관계 경색속에 오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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