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조정에서는 서둘러 선조와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선조를 모시고 피난길에 오른 조정 대신들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임금의 수라상에 오를 음식을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쟁통이라 해서 수라상을 대충 차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산속의 절로 가다 보니 고기 또한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궁리 끝에 그들은 수라상에 오를 반찬 가운데 동해안에서 잡히는 `묵'이라는 생선을 구하기로 했다. 이 생선은 겨울 한철 동해안에서만 잡히는데 담백한 맛에 비린내가 나지 않아 절의 스님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지 않겠다는 판단에서다. 일행들은 서둘러 짚으로 20마리씩 엮은 생선꾸러미를 구해 피난길에 올랐다. 수라상이라야 푸성귀에 묵 생선 단 한가지가 상에 올랐다. 그런데 선조는 처음 보는 고기인 묵을 맛본 후 깜짝 놀랐다. 아마도 그럴 것이 온통 푸성귀 반찬이니 고기를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랬을 게다. 선조는 신하들에게 생선의 이름을 물었고 신하들은 “난리 통이라 마땅한 생선을 구하지 못해 `묵'을 올렸다”고 했다. 꾸중을 내릴 것으로 예상하던 신하들은 오히려 큰 칭찬을 받는다. 산속에서 싱싱하고 담백한 생선을 맛본 선조는 기분이 좋아 당장 이 생선의 이름을 `은어'라고 부를 것을 명했다. 그래서 은색 비늘을 가진 이 생선은 매일 선조의 수라상에 오르며 사랑을 독차지하게 됐다. 어느덧 전쟁이 끝나고 다시 궁궐로 돌아온 임금은 그 생선이 다시 먹고 싶어졌다. 그런데 막상 상에 오른 은어를 맛본 임금은 이번에는 얼굴을 찡그렸다. 예전에 먹었을 때의 맛과 전혀 다른, 형편없는 은어의 맛에 실망한 것이다. 바로 수라상에는 또 다시 각종 고기를 망라한 진수성찬이 차려졌기 때문이다. 선조는 신하를 불러 이제부터는 이 은어를 `도루(다시의 뜻) 묵'이라고 할 것을 명했다. 이래서 은어로 불리던 생선의 이름은 `도루묵'이 됐다. 우리는 지금도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말짱 도루묵이다'는 말을 한다. 어느덧 계미년 새해도 한 달이 다 지나가고 있다. 새해에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올해에는 말짱 도루묵이 되지 않기를 고대해 본다.
(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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