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실정을 거듭하는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언로를 막아왔다. 유신정권에서도 그랬고 서슬퍼런 5공 정권에서도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에 대해 어김없이 언로를 차단해왔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보도지침'이었다. 유신 당시 하늘의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는 매일 3∼4건에 이르는 보도지침을 언론사에 보내 각종 시국사건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보도를 통제해 왔다고 한다. 이러한 보도지침은 중정에 의해 게재여부가 빠짐없이 파악됐으며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에 의해 80년 언론통폐합과 그해 언론기본법 제정 등 언론통제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또 신군부하에서는 `가, 불가, 절대불가' 등 각종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보도여부는 물론 방향과 내용, 형식까지 구체적으로 시달해 제작까지 정부기관이 전담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이 일부 방송사에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장남 정연씨의 병역의혹 보도와 관련, 정연씨 사진과 후보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지 말고 검찰발표만 보도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해 논란을 빚고 있다. 이에 방송사는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하고 한나라당의 요구는 군사정권 시절하의 보도지침과 다를 바 없다며 철회를 촉구하는 등 언론과 정치권에서 파장을 낳고 있다. 물론 대권장악이 코앞에 있다고 판단하는 한나라당으로서는 검찰의 병풍수사와 언론의 보도태도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지만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도가 나가면 불공정 보도라는 주장은 위험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난 6·13 지방선거와 8·8재보선에서 압승, 과반수 국회의석과 전국의 대다수 자치단체장을 장악한 한나라당의 행보에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서 마치 정권을 잡은 듯한 행동은 위험천만하다. 더구나 정권을 잡았다고 해도 언론을 장악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한 일일진데 벌써부터 정상적이지 못한 돌출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볼지 참으로 궁금하다.
(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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