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기이(紀異) 편에 실린 이야기로 '천사옥대(天賜玉帶)'가 있다. 이는 신라 제26대 진평왕(재위 579-632년)이 즉위하던 해에 상제(上帝)가 보낸 천사(天使)를 통해 옥대(玉帶), 즉, 옥으로 만든 허리띠를 받았다는 내용이 골자를 이룬다.

여기서 우주만물을 주관하는 최고신임이 분명한 상제는 지상에서는 오직 진평왕에게만 옥대를 내리고 있다. 이를 통해 진평왕은 신라 왕토에 대한 독점적이며 배타적인 지배권을 상제에게 위임받았음을 천하에 공포하게 된다.

이 때 상제(上帝)는 명칭이라든가, 옥에 대한 유별난 신앙, 왕이 지상과 하늘을 독점적으로 매개하는 존재로 설정돼 있는 점으로 보아 도교적 색채가 농후하다.

하(夏).은(殷).주(周) 이래 진(秦) 나라 이전 선진(先秦)시대 중국의 신(神) 관념이 어떻게 형성 변천했으며, 학파별로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를 규명하려 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교수인 최문형(崔文馨)씨.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박사학위 논문이 토대가 된 단행본「동양에도 神은 있는가」(백산서당)에서 그는 고대 중국의 신 관념은 자연신과 인간신 단계를 거쳐 주술적 초월신의 성격을 띠다가 객관적 자연질서를 매개로 인문화하는 과정을 겪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중국 신은 초기에는 애니미즘적 다신론에서 조상신을 중심으로 한인간신으로 변화했다가 초월신인 '상제'(上帝) 개념으로 변용됐다는 것이다.

적어도 명칭으로만 볼 때 「삼국유사」 '천사옥대' 조 설화에서 만난 신라인의 최고신 상제(上帝)에게서 저자는 선진시대 중국 신의 귀착점을 찾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신에 대한 관념은 학파별로 차이가 크다.

유가의 경우, 특히 공자는 '천'(天)으로 표상되고, 초월성과 합리성이 혼재하는 신이라는 개념에서 합리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인간 교화를 꾀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는 것이다.

반면 도가는 궁극 작용을 자연법칙, 즉, 도(道)에 두고 있으며, 묵가는 상제 개념을 그대로 원용해 강력한 인간규범의 토대로 삼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토대로 저자는 기독교 신과의 비교를 통한 동양 신의 특성을 확인하려 한다. 동양의 신이 인간의 현세적 삶, 인간내부 복귀를 지향하고 있는 데 비해 서양 신은 초월적 민족 수호신이라는 점을 큰 차이점으로 꼽는다.

정신과 귀신까지도 포괄하는 동양 신을 여호와와 비교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무리가 보이며, 동양 신의 개념을 엿보는 데 어쩌면 가장 결정적일 수 있는 순자 계열 법가를 빠뜨리고 있는 점도 아쉽다.

순자는 말한다. "기우제 뒤에 왜 비가 오는가?. 말하건대 기우제를 지내지 않아도 비가 오는 것과 같다". 순자는 또 일식 월식이 단순한 천문현상이라는 사실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막스 베버가 전근대 사회의 핵심을 '주술화'라고 간파하기 이미 2200년 전에 순자는 천(天) 혹은 상제(上帝)에 대한 일련의 신앙이 주술, 다시말해 '쇼'에 지나지 않음을 갈파했던 것이다. 304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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