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은 화폐도안으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 동·식물, 문화유산 등을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화폐 앞면의 도안으로는 인물초상을 가장 널리 사용하고 있다.

1950년 한국은행 설립 이후 인물 초상이 화폐 도안으로 채택된 경우 그 인물은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쉽게 아는 역사적 인물이다. 현재 현용화폐에도 천원권에는 퇴계 이황, 오천원권에는 율곡 이이, 만원권에는 세종대왕 등 일반적으로 국민들에게 추앙받는 인물이 화폐도안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파격을 보인 경우가 단 한 번 있었는데 바로 1962년 발행된 100환짜리 지폐다. 이 100환의 앞면에는 한복 차림의 부인과 초립을 쓴 아이가 저금통장을 펴보면서 웃고 있는 모습이 들어있다. 역사적 업적과는 무관한 그저 평범하고 친근한 우리들 어머니와 자식의 모습이 처음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 모자상 화폐가 발행된 계기는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붕괴되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이 들어가 있는 화폐(100, 500, 1천환권)를 더 이상 발행할 수 없었던 것에서 비롯됐다. 당시 교체 대상 화폐 중 1천환과 500환은 이승만 대통령 초상 대신 세종대왕을 주 도안으로 변경해 발행이 순조롭게 진행돼 각각 1960년 8월 15일과 1961년 4월 19일 발행됐으나 100환권은 교체를 준비하던 중 5·16군사쿠데타가 발생해 그 시기가 늦춰지게 되면서 다시 도안이 변경됐다.

군사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에 필요한 자금조달을 위해 범국민적인 저축운동을 전개하면서 그 일환으로 화폐도안에 저축을 홍보하는 이미지를 담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고심끝에 모자상 도안이 구상되고 1962년 5월 16일 발행된 100환 지폐에 담겼던 것이다.

그런데 이 모자상 화폐는 오래 가지 못했다. 도안에 문제가 있어서 교체된 것은 아니었으니 불운이 아닐 수 없다. 1962년 6월 10일 환(?) 표시 화폐의 유통을 금지하고 새로운 원 표시 화폐를 사용토록 하는 긴급통화 조치로 그 유통이 정지된 것이다. 새로운 100환권이 발행된 지 불과 24일 만이다. 이로 인해 모자상 화폐는 우리나라 화폐 도안 역사에 새로운 시도로 알려지기보다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단명 화폐라는 기록으로 더 알려진 화폐가 됐다.

여기에다 이 모자상의 모델에 대한 갖가지 소문이 무성했다. 나중에 실제 이 화폐도안의 주인공은 당시 조폐공사에 근무하다가 결혼으로 퇴직한 권기순 씨와 아들 윤재순 씨로 밝혀졌지만 한동안 이런 저런 소문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화폐의 앞면 소재로 이용된 인물 중 가장 오랜 기간 모델로 채택된 사람은 누구일까? 지금까지 채택됐던 이승만 대통령,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이이, 이황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모델로 이용된 것은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은 1960년 8월 15일 천환권에 처음 등장한 이래 오백환권, 백원권, 만원권에 이르기까지 46년에 걸쳐 여러 권종에 두루 사용된 우리나라 지폐의 슈퍼모델인 셈이다. 내년 초 새로 발행되는 새 만원권에도 세종대왕이 채택되고 있으니 앞으로 상당기간은 세종대왕의 기록은 깨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인천본부 제공〉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