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발행되는 대부분의 주화는 지폐와는 달리 액면 가치와 제조비용의 차이가 적거나 오히려 최저 액면 주화의 경우에는 제조비용이 액면가치를 상회하는 경우도 있어 위조나 변조의 위험이 거의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모양 및 재질이 비슷한 주화를 갖고 있는 인접 국가 사이에는 환율의 차이를 노린 주화의 변조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99년을 전후해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500원화를 변조해 500엔화(당시 원화기준 약 5천240원)로 사용하는 범죄가 큰 골칫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우리 500원화와 일본 500엔화의 재질(구리 75%, 니켈 25%) 및 지름(26.5mm)이 우연히 같게 만들어진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즉 일본 500엔화(7.16mm)보다 약간 무거운 우리나라 500원화(7.64mm)의 표면을 깎거나 구멍을 뚫을 경우 우리나라 500원화는 일본 내 자동판매기에서 500엔화로 인식돼 각종 물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 변조된 500원화를 자동판매기에 넣고 반환 레버를 누르면 일본 500엔화로 교환이 가능하다는 점이 범죄의 표적이 된 것이다.

이에 일본 경찰청은 중국인 등 외국의 화폐 변조 조직들이 일본 내 대규모 500원화 변조 공장을 운영하면서 불법 체류자를 대상으로 변조된 500원화를 밀매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벌였다. 또 당시 일본 자동판매기 업체들은 변조된 500원화의 사용 방지를 위해 식별의 정밀도를 강화한 자판기를 설치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일이 이렇게 커지자 이러한 일본 NHK방송 등은 문제의 근원이 우리나라가 500원화를 당시 일본의 500엔화를 본떠 만든 것이라는 추측하에 한국은행에 화살을 돌리면서 진실규명을 요청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 500원화가 먼저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본 500엔화를 모방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나라의 500원화 발행 결정시기(정부 승인일)는 1981년 1월 8일로 일본의 500엔화 발행에 대한 각의 의결일인 1981년 6월 30일보다 6개월 정도 앞섰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우리나라 500원화의 발행은 새로운 최고 액면 주화의 도입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정부 승인일 몇 년 전부터 도안 선정 등의 작업이 비공개적으로 추진됐다는 기록들이 남아있어 우리가 먼저 500원화 제작을 추진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다행히 일본 통화당국이 2000년 8월부터 500엔화의 재질을 니켈 황동(구리 72%, 니켈 8%, 아연 20%)으로 바꾸고 여러 위조방지 요소를 추가해 새 500엔화를 발행함으로써 이 사건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 더. 우리나라 500원화와 2000년 이전 일본 500엔화가 재질과 지름이 같고 무게도 비슷했으나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주화의 앞뒤 도안 방향이 달랐다. 우리나라 주화는 주 도안 소재가 있는 앞면을 좌우로 뒤집으면 뒷면 액면이 거꾸로 돼 있다. 반면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 나라의 주화는 앞면 도안과 뒷면 액면의 상하가 같은 방향으로 제조돼 있다. 우리나라 주화처럼 앞뒷면 도안의 상하 방향이 다른 것이 좋다는 의견이 많다. 독자여러분들도 직접 한 번 해보기를 권한다.

     
〈한국은행 인천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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