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고유의 문화유산인 종가(宗家)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MBC가 신춘기획으로 마련한 2부작 다큐멘터리「한국의 종가」(17∼18일 밤 11시)는 점차 뿌리를 잃어가는 21세기 현대인들에게 잊혀져가는 한국의 정신과 문화를 되돌아 보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준다.

1부의 첫 에피소드로 등장한 집안은 대표적인 명문 종가인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한 퇴계 이황 선생의 종가. `경상 감사 자리보다 퇴계 종손 자리가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거 남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현재는 종손 이동은(95)옹과 아들 이근필(72)씨가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4년전 근필씨의 부인인 종부(宗婦)가 세상을 떠난 후 이 집안의 가장 큰 일은 근필씨의 아들 치억(29)씨의 신부감을 찾는 일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봉제사, 접빈객을 실천하고 종가의 많은 지손(支孫)들까지 보살펴야 하는 위치이기에 종손에게 시집오겠다는 여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오늘날 종가의 현주소는 치억씨의 결혼문제로 여실히 드러난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학봉 김성일의 15대 종가에 얽힌 이야기. 휴먼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례적으로 드라마타이즈 기법을 활용해 자칫 지루하기 쉬운 프로그램에 긴장감을 감돌게 한 점이 돋보였다.

포커스는 김성일의 13대 종손인 김용환에게 맞춰진다. 소문난 난봉꾼이자 노름꾼, 파락호(破落戶.방탕하여 가산을 잃은 사람)로 알려졌던 그는 외동딸이 시집가기전 시댁에서 보낸 돈마저 노름판에서 다 날려 버린다. 자손들의 인터뷰를 통해 현시가 200억원에 달하는 가문의 재산을 모두 탕진했다는 사실도 공개된다.

시청자는 처음에는 `종손은 운명적으로 태어나다보니 자격이 못 되는 종손을 둔집안은 몰락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 주려는 것이구나' 하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묵묵히 만주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김용환의 행적이 뒤늦게 드러난다. 실제로 95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고 김용환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고 김용환의 딸이 죽은 아버지에 대한 회한과 존경심을 담아 한편의 장문의 편지를 쓰는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또 김용환 이후 대가 끊긴 학봉 종가에 먼 친척뻘인 김시인 옹이 14대 종손으로 들어온 사실도 공개하면서 제작진은 "종가가 이어져 내려온 것은 혈연보다 오히려 그 정신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18일에 방송되는 2부「운악과 고산」에서는 재령 이씨 운악 이함 선생의 17대 종손인 TG(삼보컴퓨터) 이용태 회장의 부친 장례식 장면을 통해 효의 의미를 깨우친다. 최첨단 산업을 이끌면서도 전통과 효 사상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이 회장은 미국 유학 3년 8개월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께 편지를 보냈다. 지난 추석에 99세인 부친이 돌아가시자 그는 5일장을 치루고 현재까지도 아버지에 대한 추모를 실천하고 있다.

연출자인 윤영관 PD는 "촬영 시작 전 지난 추석에 신문에서 이용태 회장 부친의 장례 소식을 접하고 바로 제작진과 함께 달려갔다"면서 "종가의 장례식 모습과 이회장의 효심을 통해 면면히 내려온 종가의 전통은 결국 효사상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 조선시대 최고의 시조시인 윤선도를 배출한 전남 해남군 연동마을의 고산 종가 녹우당을 통해 종가를 면면히 이어오는데 핵심적인 종부들의 역할을 살펴본다.

그들이 지켜낸 500년의 흔적, 예술혼이 담긴 유물들, 그리고 현재 종가를 지켜나가는 현 종손, 종부의 이야기 등을 면밀히 따라가 본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이러한 종가의 학술적인 의미와 전반적인 내용을 살피고,방송에 다뤘던 네 종가 외에도 율곡, 서애, 밀양 손씨 종가 등을 취재해 종가의 젊은이들과 학자들이 바라보는 현 종가의 모습과 미래를 생각해본다.

윤 PD는 "농경 문화를 바탕으로 이어져 오던 종가가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는 사실을 시청자와 함께 느끼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기획했다"면서도 "현재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수십 개 정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종가들도 2ㆍ3대인 60∼90년 이후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될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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