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 사랑하던 연인들도 시간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이렇다 할 새로움도, 더 이상 두근거리는 심장을 기대할 수도 없는 오랜 연인들은 고작 2년 뿐이라는 ‘사랑의 유효기간’을 인정하거나 혹은 넘어서야 하는 갈림길에 내몰린다.
영화 ‘허밍’은 ‘익숙해진 사랑은 잃고 나서야 그 빈자리를 알게 된다’는 다소 진부한 틀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스무 살부터 6년째 만나고 있는 오랜 연인인 대학원생 준서(이천희)와 다이빙 강사 미연(한지혜)에게도 여지없이 권태기는 찾아온다. 문제는 미연의 사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에도 불구, 준서는 모든 것을 함께 하려는 미연에게 점점 질려 간다는 데 있다.
급기야 준서는 미연과 거리를 두기 위해 1년간의 남극 세종기지 단기연구과정에 지원한다.
만난 지 2천 일을 앞둔 어느 날 아침, 준서는 무선 통신기를 들고 집에 찾아온 미연을 귀찮아하며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그런데 미연의 이모(이휘향)에게서 미연이 어젯밤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 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준서는 조금 전까지 함께 있던 미연이 병원에 누워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비오는 날 공중전화에서 있었던 첫 키스의 떨림, 첫 만남의 설렘, 오래도록 사랑을 지켜 나가자던 약속은 그제서야 준서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뒤늦게 자신의 무심함을 뉘우친 준서는 미연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영화 ‘허밍’은 지난 1998년 ‘연풍연가’를 만들었던 박대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멜로 영화다. 기본적으로 젊은 남녀의 착하고 순수한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별다른 사건이 없더라도 차근차근 감정을 쌓아 관객의 심정에 호소하는 멜로 영화의 기본을 지키고 있다.

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사랑의 감정도 무리 없이 잘 그려냈고 무엇보다 막 사랑을 시작한 풋풋한 연인들의 모습을 과거 회상 장면을 통해 아기자기하게 표현했다.
여기에 멜로 영화의 필수조건인 서정적인 풍경도 제대로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피날레를 장식한 갈대밭, 깔끔한 배경과 곳곳에 놓여진 화분, 귀여운 강아지까지 세세하게 신경 쓴 소품들이 어우러지는 예쁜 화면이 가득하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판타지인 데다 미연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놓지 않도록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 순제작비 7억 원의 저예산 영화(필름 대신 HD제작시스템 도입)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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