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 지적 이해의 차원이라면, '깨침'이란 그 앎이 송두리째 난파당하는 경험이다"

「깨침과 깨달음」(윤원철 옮김)은 뉴욕주립대 박성배 교수(불교학)가 1983년 미국에서 출간한 'Buddhist Faith and Sudden Enlightenment'의 번역판이다.

박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책을 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깨침과 깨달음'이 어떻게 다른가를 밝히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깨침과 깨달음은 다른 것인가?

박 교수는 1962년 동국대 박사학위 논문「보조국사의 돈오사상 연구」를 쓰던중 지도교수와 부딪쳤다. 논문이 보조국사의 권위를 건드렸던 탓이다. 그때 송담 스님은 "돈오란 '깨치지' 않고서는 모른다.."라는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으나 1966년 만난 성철 스님으로부터 "깨달음은 깨침이 아니다. 혼동하지 말라"는 말을 다시 들은 뒤 동국대 교수직을 버리고 참선의 길로 향했다.

박 교수는 "깨달음이란 말은 지적 세계에서 종래 몰랐던 것을 좀 알았다는 말인데 비해 깨침은 지적 세계 자체의 난파"라며 "전자가 일종의 보태는 행위라면 후자는 보탤 자리 자체가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깨달음이 업의 연장에 불과하다면 깨침은 업이 깨지고 부서지는 일로, 불교적연기의 삶으로 되살아나는 것은 깨침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저자의 이같은 사유체계는 돈오(頓悟) 사상의 핵심에 다가가는 열쇠이기도 하다.

박 교수는 깨침과 깨달음의 유별을 밝히는 과정에서 '체용'(體用.몸과 몸짓)과'몰록'(갑자기.sudden)의 개념을 내보인다.

생명있는 몸이라면 반드시 몸짓이 있게 마련이며 그것이 본디 하나임을 안다면 깨침의 세계가 보다 분명해지리라는 것이다.

또 돈오를 '갑작 깨달음'으로 이해할 경우 관찰 가능한 외적 사건으로 전락하는 반면 '몰록 깨침'으로 받아들이면 오관으로 관찰이 불가능한 내적 사건으로 올라서게 된다. 예문서원刊. 320쪽. 9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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