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이라크 전쟁을 남의 나라 전쟁으로만 볼 수가 없는입장이다. 병력 파견, 교민 보호 등의 직접적인 대책 외에도 유가 폭등, 수출 환경악화 등에 따른 비상대책을 세워야 한다. 수출의 미국시장 의존도가 높고 기름 생산이 전무한 우리로서는 특히 경제 분야의 비상대책 수립과 발빠른 시행이 긴요할 수밖에 없다.

고건 국무총리 주재로 18일 열린 이라크사태 관계장관회의 결과를 보면 정부의 경제 상황 인식이 여전히 안이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지울수 없다. 특히 에너지 분야 대책의 내용이 미흡하다는 생각을 더 하게 한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면' 그때부터 단계적으로 에너지 대책을 시행한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야간 업소 및 골프장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에 대한 영업제한 조치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 비축유를 풀어 가격 폭등을 억제하며 승용차 10부제 운행을 시행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왜 꼭 일이 터진 후에라야 그런 대책을 시행해야 할까. 그 동안의 미국 태도로 보아 전쟁 발발이 확실하게 예견됐다면 그 즉시 이런 대책들을 시행했어야 하지 않을까. 미리 미리 기름을 절약하고 더 비축해서 안될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개전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는데도 여전히 `전쟁이 시작되면' 그런 대책을 시행하겠다니 이게 무슨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한 하는 일인지, 아니면 그동안 전혀 행정적인 준비를 못했기 때문인지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입장에서는 굳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면서까지 앞당겨 비상대책을 시행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판단했을 성 싶다. 그러나 경제 분야는 이라크 전이 아니더라도 이미 비상사태를 맞고 있는 중이다.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 전망등급을 하향조정한 것을 계기로 외국자금의 이탈 조짐이 가시화되고 SK의 분식회계여파로 인해 증시에 파장이 일었으며 그에 앞서 경상수지 적자가 2개월째 이어지는등 불안한 상황이 지속돼오고 있다. 가계 빚 급증, 기업의 투자 마인드 위축, 공적자금 상환에 따른 재정 적자 만성화 우려 등 자칫 한국경제가 뿌리째 흔들릴 위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곳곳에서 재정경제부 등의 고질화한 `아직 괜찮다'는 식의 전망에 경고를 보내며 올해 성장률을 3%대, 심지어 1%대로 낮추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몇 차례 언급했지만 재정경제부가 투자나 소비 위축을 우려해 경제 상황을 소상히 밝히지 않은 채 전망을 얼버무리더라도 시장이 그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지금은 과천이나 여의도 보다 시장이 훨씬 앞질러 경제상황을 예리하게 읽고 정확하게 전망하는 시대다.

이라크전이 조기 종전될 것으로 보고 투자 전략을 짜는 것은 개인 투자자 등이나 할 일이다. 국가의 전략은 최악의 사태까지 대비해가며 짜여져야만 한다. 정부나 국민 모두 느슨해진 경제 마인드를 다잡고 당장 차량 운행 등을 줄여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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