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비대화로 인한 갖가지 부작용이 거의 치유 불능 상태에 이른 가운데에서도 인구 유입은 오히려 급증하는 추세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충청권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유도 지방 분권화 촉진 뿐만 아니라 이런 수도권 문제의 해결을 염두에 둔 것이었을 테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움직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전제로 한 수도권과 충청권의 각종 수요 조사를 제대로 하기도 전에 수도권 신도시 건설 계획이 나오더니 25일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선 한 술 더 떠 조기착공 계획까지 발표했다. 정부가 도대체 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옮길 생각이 있기나 한 것인지, 수도권 비대화를 막을 의지는있는 것인지, 국민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전입한 사람은 62만5천명에 달했다. 수도권 전입자 수는 93년 이후 감소추세를 보이다가 99년부터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반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빠져나가는 사람은 급감하는 추세다. 높은 인구밀도로 인해 환경, 교통, 교육 등 각 분야의 문제가 날로 쌓여온 터에 증가세가 꺾이기는 커녕 더 높아지는 추세니 `터져버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수도권 과밀 해소는 이제 보통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단계를 지났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고 그 점에서 충청권 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과감하고도 효율적인 해결책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그 `과감하다'는 점이 역시 걸림돌이 됐음직하다. 정부 실무자들로서야 너무 방대한 계획이라서 아직 형체도 그려보기 힘든 행정수도 이전문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당장은 수도권 집값 상승, 그에 따른 물가 걱정부터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도권 정책 방향이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이유인데,실무자들의 그런 입장은 십분 이해한다고 쳐도 역시 옳은 해결책은 못된다는 생각이다. 우선 물가대책의 하나로 신도시 조기개발을 추진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물가를 잡는 일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도시 몇 개 만드는 일을 원대한 국토개발 시각에서 보기 보다는 경기부양이나 물가대책을 위한 정책수단 쯤으로 가볍게 보는 인식이 잘못됐다는 얘기다. 또 자족형 신도시를 세우겠다는 계획도 예상되는 결과가 뻔해 굳이 지적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분당이나 일산의 경우만 봐도 이내 알 수 있는 일이다. 수도권 과밀에 상승작용만을 할 뿐이다.

정부는 우선 수도권 대책과 충청권 행정수도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과 계획을 밝혀야 한다. 노대통령의 공약 뿐만 아니라 각 부처에서도 이미 몇 차례 밝히기는했지만 국민이 보기에는 방향이 선명하지가 못하다. 어째서 행정수도가 들어설 충청권의 새로운 수요와 수도권의 분산 효과 등이 제대로 계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수도권 곳곳의 택지 개발과 신도시 개발은 지속돼야 하는 것인지, 정부의 계산법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계획을 분명히 밝히되 그 계획의 방향은 당연히 수도권 기능과 인구를 과감하게 분산하는 쪽으로 잡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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