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알 때부터 조금씩 마음의 평정을 얻게 된다. 작품과 하나가 되면서 나는 작업에 더욱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화가 류민자(柳敏子ㆍ61) 씨의 예술관은 수행자의 구도행을 닮았다. 내가 있음으로 대상이 있고, 집착은 여기에서 생기며 사랑과 미움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 이유도 이 집착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이 마음에 있고 마음이 없으면 미움도,고통도, 원망도 없을 것이라는 대목은 불교의 유심론(唯心論)을 떠올리게 한다.

류씨가 6년만에 개인전을 열어 무경계의 자유를 추구해온 자신의 최근 예술세계를 펼쳐낸다. 4월 2일부터 15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마련될 전시회에는 `피안' `비천' 등 대작 13점과 `그리움' `풍요' 등 소품 10점이 걸린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로 60여년의 삶을 투영하려 한다.

그는 사조나 시류에 쉽게 휩쓸리지 않은채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로 꼽힌다. 한국화와 서양화는 물론 불교와 기독교, 인공과 자연처럼 분리와 단절에 익숙해져 있는 세간의 고정관념에 빠지지 않고 조화와 균형을 꾀해온 것이다. 한지와 캔버스, 전통채색과 아크릴를 오가며 작업한 이번 출품작에 작가의 이같은 시각이 여실히 드러난다.

류씨의 `경계 뛰어 넘기'는 30여년 전에 이미 시작됐다. 한국화가로 분류된 그는 서양화가이자 남편인 하인두(작고)와 함께 나란히 부부전을 열어 화제가 됐다.당시만 해도 한국화와 서양화는 상호 불가촉의 관계처럼 여겨졌는데, 이같은 장르간의 벽을 보기좋게 깨버린 것이다.

한국화로 출발한 류씨였으나 전통의 기법과 표현에 안주하지 않은 가운데 끊임없는 변화를 일궈내려 했다. 그리고 자신의 여덟 번째 개인전이 열린 1982년 무렵에는 한지작업 외에 캔버스와 아크릴을 사용한 서양화 기법과 표현을 끌어들여 예술영역을 확장했다. 이 역시 분별심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으려 했던 예술적 자세와 무관하지 않다.

류씨가 그동안 화면에 일관되게 묘사해온 대상은 산, 나무 등 자연이 많다. 작가는 이에 대해 "자연의 아름다움은 온 누리에 충만해 있다. 아름다움은 감동이 쌓인 결과이며 여기서 분출되는 감흥은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승화된다"고 말한다. 자연뿐 아니라 불상, 탑, 인간 등도 소재로 등장하곤 한다.

이번 출품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인간 군상이다. 대작인 `풍년가' `비천' `피안의 나무'에는 역동적 율동미가 느껴지는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는 푸른색과 파란색이 주조를 이루는 화면을 운영하되 색과 선, 면을 마치 인과율의 관계처럼 유기적으로 이끌어간다. ☎736-1020.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