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교 인하대 법대 교수/변호사

 요즘 불심이 뜨겁다. 이명박 정부가 기독교에 편향돼 있다는 생각에 불교계가 분노로 들끓고 있다. 정부는 오해라면서 무마하려 애쓰지만 쉽게 진정될 것 같지는 않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서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인 2004년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을 당황케 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통령이 다니던 소망교회가 자주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몇몇 고위공직자들이 앞 다투어 ‘장로님’과 같은 코드라고 과시하려는 행태를 보이는 바람에 불교계가 언짢아하던 차에 얼마 전 경찰이 조계종 총무원장의 승용차를 수색했으니 기름에 불을 끼얹은 형국이 됐다. 그러니 말 몇 마디 가지고는 불이 쉽게 꺼질 것 같지는 않다.

몇년 전에 개신교를 믿는 사람과 얘기하다가 누가 천주교 신자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그 개신교인이 대뜸 “그 사람 지옥 가겠네?”해서 아연했던 적이 있다. 당시는 내가 천주교 영세를 받기 전이긴 했지만(신자라 자처할 신심은 못 된다), 자기와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지옥 운운하는 독선에는 소름이 끼쳤다. 더욱이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개신교와 기독교 모두 예수를 믿는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던데, 그 사람에게는 천국과 지옥만큼 달랐던 것이다.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는 그 뿌리가 같을 뿐만 아니라 오직 하느님 한 분을 유일신으로 모신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오직 하나뿐인 그 신을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믿기 때문에 이교도나 무신론자는 ‘불신지옥(不信地獄)’이라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이긴 하다. 그러나 이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관철하면 독선적일 수밖에 없기에 위험하다. 스스로 해탈을 추구하는 불교와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유일신을 믿는 세 종교가 지배적이었던 서양에서 종교전쟁이 끊이지 않았을 터다.

그러나 과거의 일일 뿐이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고, 무엇보다도 인권의 개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종교의 자유가 널리 인정된 이후 문명사회에서는 ‘불신지옥’이라는 독선이 발붙일 수 없게 됐다. 종교의 자유는 어떤 종교를 믿든 자유임은 물론 종교를 믿지 않을 자유도 의미하고, 동시에 타인의 종교를 존중해야 할 의무를 포함한다. 그 타인 역시 종교의 자유에 의해 그 종교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존중돼야 한다.  
그러므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우리 헌법 아래서 타인의 종교를 부정하는 언동이 용납될 수 없다. 바람직하기로는 타인의 종교도 진리에 이를 수 있는 다른 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겠지만, 교리상 그러지 못할 수는 있다. 어떤 종교인이 자신의 교리가 유일한 진리라고 믿더라도 거기까진 자유다. 그러나 자신의 믿음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자신의 종교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타인의 종교는 잘못됐다고 배척하는 것은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다. 타인의 종교의 자유를 존중해야 할 의무를 저버린 것이기도 하거니와 예의상으로도 말이 안 된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공직자에게는 한 가지 의무가 더 있다. 우리 헌법이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명시하고 있으므로 공직자는 공석(公席)에서 자신의 종교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 절대다수의 우리 국민들이 동·서양의 종교를 믿고 있지만 그 동안 종교로 인한 갈등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대통령을 비롯해 몇몇 공직자들의 종교적 편향으로 불교계의 분노를 사고 말았다. 촛불에 덴 정부가 불심에도 데어서야 무슨 일을 하겠는가.
끝으로, 불교계가 화를 낼 만하기는 하지만 조금 지나친 반응이 아닌가 한다. 우리 불교는 한반도에 들어온 이래 5교 9산 등 여러 종파가 갈렸지만 서로 싸운 일이 없다. 근세에 들어온 서양종교를 배척한 적도 없다. 우리의 불교는 성리학 근본주의자들이 지배한 조선조 500년간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임진왜란과 같은 국난에서는 나라 구하기에 앞장섰고, 평시에는 수행에 정진해 일반 백성의 등불로서 빛을 잃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민과 기독교인들이 현 정부의 종교편향적 행태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재발방지를 다짐하고 있느니 만큼 좀더 의연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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