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중 소비자물가가 19개월만에 처음으로 4%를 넘어섰다고 한다. 각 기관이 잇따라 올해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한 데 이어 한국은행도 곧 경제전망을 대폭 수정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경제위기론과 스태그플레이션(저 성장속의 고물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부 경제부처 고위직들의 위기상황은 여전히 안이한 모습이다. 어렵긴 하지만 위기는 아니다 라며 비상대책 마련보다는 아직도 기업과 소비자들의 투자 및 소비위축만을 더 걱정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미 그런 단계는 지났다는 것이 경제계의 판단이다. 지금은 국가적인 경제비상대책을 요구하는 시점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당장 경제비상대책을 시행해야한다고 보는 주된 이유는 지금 우리 경제를 흔드는 요인이 이른바 외생변수들이기 때문이다. 북핵으로 인해 불거지기 시작한 불확실성이 미국과 이라크 전쟁으로 더욱 확산되면서 이제는 한국경제 뿐 아니라 세계경제 전망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이런 판에 특히 우리나라 같이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경제위기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 아닐수 없다.

경제상황이 잘못될 경우 관료들이 변명하는 단골 메뉴가 된 외생변수라는 말도, 사실은 한국경제에서는 무의미한 말로 취급돼야 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탓에 외생변수는 내적 요인 못지 않게 항상 주요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생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상황에서 며칠전 한국은행 총재가 성장률을 하향조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경솔하다고 지적한 재경부 관계자의 언급은 논리적으로나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본다. 한참 전부터 주부들의 장바구니가 훨씬 가벼워졌으며 이제는 학생들까지 경제걱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장밋빛 전망으로 얼버무릴 때는 지났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이 4월 경제전망을 전면 수정하기에 앞서 이미 많은 기업과 가계가 허리띠 졸라매기에 들어갔다. 민간에서는 내핍으로 경제활동의 방향을 잡았다는 얘기다. 아무튼 환란이나 국가부도 같은 상황이 터져 버렸다면 그것은 이미 위기가 아니다.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거나 예견될 때가 됐다면 그게 바로 위기 상황이다. 또 그런 때는 지체 없이 비상대책에 들어가는 게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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