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동석(광명3·기획위원회위원) 경기도의원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수돗물을 잘 먹지 않는다. 일반가정에서는 말 할 것도 없고 길거리를 가다가도 목이 마르면 생수를 구입해 마신다. 이런 것이 일반화되어 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십수 년 전 처음으로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생수를 구입한 날 “이제는 물도 마음 놓고 못 먹는 세상이 왔구나!”하며 물을 마셨던 적이 있었다. 약간 어색했었고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돈도 무척이나 아까웠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흘렀다. 올해는 추석이 무척이나 더웠다. 거리에는 반바지에 반팔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추석 때 입으라고 점퍼를 사주셨던 기억을 뒤로 하며 나 또한 너무 더위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소매를 팔꿈치까지 올리고 지냈다. 차례를 지내고 친척집에 잠시 들렀었는데 집에 도착하니 집이 시원했다. 미리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추석날 에어컨이라니! 돈 주고 물 사먹던 날 느꼈던 것이 돈 주고 물을 사서 마셔야 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대한 약간의 충격과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안타까움이었다면 올해 추석 때 난데없는 반바지와 에어컨을 보며 느꼈던 것은 “앞으로 올 것이 정말 올려나 보다”하는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이 제발 올해 한 해 추석만이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만 내가 처음으로 생수를 구입한 이래 지금껏 계속 물을 사서 마시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별다른 일이 없다면 계속 생수를 사 먹을 것 같다. 이제는 어색함도 없고 서글픈 생각도 들지 않는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그러나 십년 후에도 추석날 반바지에 에어컨이 필요하다면 그 때가봐야 알겠지만 두려움과 절망감이 한꺼번에 몰려올지도 모른다.
나는 환경전문가도 아니고 환경운동가도 아니다. 환경문제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 그냥 필부로서의 소박한 지식이 전부다. 예컨데 헌법에 보면 누구나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침해 받는 유형의 대부분은 일조, 조망, 소음, 진동, 분진 등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들 정도다. 알고 싶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살다보니 알게 된 그러한 정도의 지식정도밖에 없다. 나는 나의 이러한 권리가 침해 받으면 그 즉시 그 침해를 구제 받기 위해 분명 여기저기 하소연 할 것이고 동분서주할 것이다. 그 침해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지금 내가 하소연 하고 싶은 것은 분명 나의 어떠한 권리가 환경문제 때문에 침해를 받은 것 같기는 한데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데 돈으로 물을 사먹을 수밖에 없고, 이것을 당연시 하는 현실을 하소연 하고 싶다. 추석이 무더워 져서 더 이상 점퍼를 입고 다니지 않아도 되며 반팔에 반바지에 에어컨이 필요한 작금의 현실을 하소연 하고 싶다.
한 달 전쯤 정부는 신산업정책의 일환으로 녹색성장이라는 정책을 내놓았다. 8·15경축사에서도 밝혔고, TV뉴스에서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녹색성장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아무래도 성장정책의 기조가 녹색으로 갈 모양이다. 기존의 산업정책이 대부분 개발성장위주였고 환경은 부수적인 제어장치로서의 역할만 했지만 이번에 정부가 마련한 저탄소 녹색성장은 먹고 살 방편도 마련하고 동시에 환경도 살리자는 정책으로 큰 틀의 변화를 주었다. 계획도 매우 구체적이다.
환경이라는 것은 지금 현재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먼 훗날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후손들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다. 나는 자라나는 내 자식과 아직 존재하지 않은 내 자식의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 비단 쾌적한 환경만이 아니다. 때때옷으로 대변되는 유년기적 추석에 대한 추억과 따뜻했던 어머니의 사랑을 내 자식에게도 물려주고 싶다. 그래서 먼 훗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우리 후손들과 추석에 대한 소중한 추억들을 시간을 초월해 공유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앞서 언급한 현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이 나의 소중한 추억을 후손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할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이제 더 이상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고 더 이상 환경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되길 원하지도 않는다”는 어떤 환경전문가의 말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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