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것을 빌려 쓴다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남의 집에 월세나 전세로 살아도 이것저것 눈치 보이는 것이 있게 마련이고 친구 차를 빌려 타면 흠집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신경이 쓰인다. 무엇이든 내가 소유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한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빌려 쓰는 것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것은 그것이 비합리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제도화되지 못하고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렌트 또는 리스의 개념과 시스템이 정착되지 못하면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를 직접 해결해야 하고 감정적인 문제로 비화돼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기 어려워진다. 세 들어 사는 집에 문제가 생기면 집주인과 실랑이를 하고 옆집 텐트를 빌려 쓰다가 훼손시키면 감정적으로 앙금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일들이 제도화돼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어떨까? 오피스텔을 전문적으로 임대하고 관리하는 회사의 주택을 사용한다면 하자나 유지·보수에 관한 문제를 매뉴얼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유아용 침대가 필요하다면 전문적으로 대여하는 업체에서 임대해 필요한 시기 만큼 사용하고 반납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도 있다.

물론 자산이 충분하고 각종 세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굳이 렌트나 리스를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렌트나 리스를 통해 세금을 줄일 수 있고 자금 유동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고민해 볼만 하다.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1억 원 이상의 담보대출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임대아파트의 임대료를 내는 것이 이자부담보다 손쉬울 것이다. 또한 고소득 전문직이나 자영업자라면 자동차를 구입하고 할부금을 내는 것보다 자동차 리스를 통해 비용처리를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이익일 수 있다. 게다가 주택과 자동차를 보유함으로써 추가되는 건강보험료, 재산세, 자동차세 등 기타 공과금까지 계산한다면 기회비용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고소득을 올리는 자영업자가 서민용 임대아파트에서 저렴하게 살기 위해 세금을 축소 신고하고 외제차를 리스해 타고 다니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궁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오싹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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