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

 금융감독원은 대부업체 등 사금융 피해상담결과 올 상반기 피해상담건수가 지난해보다 16%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불법채권추심 관련 민원은 무려 56%나 증가했다고 한다. 사금융업체들이 돈을 못 갚는 채무자들에게 각종 불법적인 채권추심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과 협박을 일삼아 바로 형사처벌대상이 되는 행위뿐만 아니라 직장에 찾아가 망신주기, 채무변제 의무가 없는 가족·친지들에게 채무변제 요구, 심야시간에 계속 전화하기, 전화에 욕설남기기 등 채무자를 정신적으로 황폐시키는 교묘한 불법채권추심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무등록 대부업체 등 불법 사금융업체의 예를 들고 있지만, 신용카드회사 등 공금융기관으로부터 채권추심업무를 위임받은 채권추심업체들의 불법채권추심행위도 사금융업체에 못지않은 실정이다. 채권추심업무는 법률적 절차와 범위 내에서 실행돼야 하는 법률업무이지만 정부가 채권추심업체의 난립을 방치하다 보니 채권추심업체 간에 자신이 추심행위를 하다가 안 되면 다른 업체에 넘겨 서로 반복적으로 채무자를 괴롭히는 등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경제침체가 장기화되고 더욱이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채권금융기관들의 신용경색이 본격화되면서 금융기관들이 서로 채권회수에 나서기 시작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채무변제를 연체하는 채무자들이 늘어나게 되고 채권추심업체들이 무자비한 불법채권추심업무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법채권추심업무를 단속하고 감독하는 행정에는 심각한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다. 경찰은 불법채권추심업무와 같은 민생침해사범에는 상시적인 수사인력을 배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부에서 지침이 내려지면 2~3년에 한번씩 기획수사로 진행하게 된다고 하고 있고, 금융감독원은 최근까지도 불법대부업체 등은 금융기관이 아니어서 금융감독원의 감독대상이 아니라고 하고, 대부업의등록및금융이용자보호에관한법률(대부업법)상 대부업체 감독기관인 지방자치단체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금융기관 감독업무를 지자체에 떠넘겼다고 하소연하며 전국적으로 30명도 되지 않은 인력만이 대부업체 등의 감독·단속업무에 배치돼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2007년도에 처음으로 금감원, 행안부, 공정위 등으로 대부업체금융대책협의회를 출범시켰지만 올 상반기 한차례 단속 이후 업무가 지속되지 않고 있다. 불법대부업, 불법다단계업, 불법도박게임 등 3대 민생침해사범은 대한 감독·단속은 이러한 행정의 사각지대를 뚫고 계속 범람하고 있다. IMF 경제위기 이전보다 대부업체는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불법채권추심업무를 단속·감독할 기본법률의 제정도 필요하다. 이미 미국과 일본의 경우에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추심업무를 위임받아 채권추심업무를 하는 채권추심업체들은 추심결과에 따라 얻는 성과급에 목을 매고 각종 비윤리적인 추심행위를 한다는 점에 주목해 이들의 채권추심업무를 제한하는 공정채권추심법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일정한 저녁시간 이후에는 채무자에 전화하는 하는 것을 제한하고, 변제의무 없는 채무자 이외의 가족·친지들에게 채무변제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불법채권추심행위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을 하도록 하고 있고, 채무자 방어권 제도를 도입해 채무자가 변호사, 법무사, 신용중개사 등 일정한 자격 있는 대리인을 선임해 채권자에게 통지한 경우는 채권자는 채무자의 대리인을 통해서만 채권추심요구를 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다.
고대나 중세사회에서는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는 채무자는 노예가 됐다. 빚을 못 갚는 채무자에게 ‘인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던 시대다. 그러나, 인격의 자유를 국가의 공권력도 침해할 수 없는 천부의 인권임을 천명하고 있는 근·현대 사회의 헌법체계에서는 채무자에 대한 불법채권추심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사회의 기본질서를 흔드는 범죄행위다. 고대나 중세사회에서도 채무노예가 늘어나는 것은 사회경제 전체의 생산력의 침체를 가져오고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기 때문에 고려의 광종이나 조선의 정조 등 부국강병을 꿈꾸었던 현명하고 용기있는 군주들은 기득권세력인 귀족이나 노론양반들의 집요한 반대에도 채무노예들이 양인으로 돌아가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제 현명한 관료·정치인들이 공금융기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700만 명의 서민들, 불법채권추심행위에 노출돼 있는 189만의 사금융이용자들, 당장의 불법채권추심행위에 시달리고 있는 38만 명의 불법대부업체 이용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행정감독체계의 정비와 공정채권추심법의 제정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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